곰이 된 남편...뒤늦게 코로나에 걸린 그와의 '발칙한 상상'
곰이 된 남편...뒤늦게 코로나에 걸린 그와의 '발칙한 상상'
  • 이영미
  • 승인 2023.06.2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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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칼럼] 남편이 뒤늦게 코로나에 걸렸다. 처음도 아니고 종식된 것도 아니지만, 엔데믹 이후 이제 걱정이 거의 사라졌다 믿었는데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엔데믹 직전이어서 꼼짝 없이 격리를 해야 했다.

남편은 곰이 되었다. 가뜩이나 거대한 덩치로 집에만 오면 동면하듯 잠이 드는데 격리를 하게 된 거였다. 한편으로, 안방을 차지하고 밥을 받아먹는 모습이 사육 당하는 곰처럼 짠하기는 했다.

그러다 진짜 곰이라도 된다면? 상상이지만 이런 상상으로 시작된 소설은 정말 있다.

<열다섯에 곰이라니>(추정경, 다산책방)은, 어느 날 사춘기 소년 소녀에게 시작된 이상한 질병, 아니 현상을 익살스럽게 그린 청소년 소설이다. 

주인공 태웅이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털북숭이 네발로 짐승의 소리를 내는 곰이 되어 있었다. 태웅이를 시작으로 사춘기 아이들이 비둘기, 하이에나, 기린, 원숭이 등으로 변하기 시작하고 이것이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의 ‘동물화’로 원인을 찾지 못해 학교와 가정이 발칵 뒤집힌다. 

이유도 해결 방법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아이들, 아니 동물들을 그대로 학교에 보내고 너무 많은 학생들이 동물로 변해 별수 없이 학교는 동물이 된 아이들과 아직 변하지 않은 아이들 모두를 데리고 학교 운영을 그대로 이어간다. 사람일 때 성향을 그대로 지닌 동물화된 아이들은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해 나가기도 하지만, 사람일 때 가졌던 버릇들까지 그대로 갖고 있어 문제는 커진다. 

전교 회장은 사자가 되어 학교를 접수하고 일진이었던 아이는 하이에나가 되어서도 여전해서 패거리를 조직해 아이들, 아니 동물들을 괴롭히고 가진 걸 뺏는다. 동물이 되었지만 글씨 쓰기나 전자패드사용 등이 가능한 원숭이화 아이들은 수업이 가능하다는 걸로 다른 동물들과 거래를 하려고 한다. 학교 뒷산에는 가출 소년들이 들개가 되어 패밀리를 만들어 떠돌고 학교는 가진 동물과 못 가진 동물들의 서열화가 시작된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열 다섯, 중2 학생들을 힘만 센 짐승으로도 표현하는데 이 소설이야말로 기발하고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한다. 재미있게 읽다 보면 청소년소설이라는 걸 잊고 빠져들게 되는데 그 재미에 녹아든 학교와 사회 풍자 또한 기막혔던 작품이다.

읽으면서, 만약 사춘기 직장인이 동물화 됐다면 어땠을까 싶은 상상을 하게 됐다. 이를테면,

-김대리한테 점심시간까지 기획안 보내라고 했을텐데 어디갔나!

-김대리가 지금 화장실에 갇혀 있습니다.

-갇혀있다니 무슨 말인가?

-김대리가 갑자기 가젤로 변해서 화장실 문에 뿔이 껴서 못나오고 있습니다. 많이 걸릴겁니다.

-걸리다니 어서 구조해야지!

-긴급 구조대원들 상당수가 뱀으로 변해 동면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3개월 뒤에 전화하랍니다.

이런 일도 생기지 않을까.

-사장님과 임금협상을 해야 하는데 사장님이 3시간째 안 나오십니다. 노측 의견대로 밀고 나가도 됩니까?

-사장님이 나무늘보로 변하셔서 앞으로 2시간이 더 소요될 걸로 보입니다.

여기까지 상상하다 뜨끔했다 회사에서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남편이 곰이 되었다면 임금협상부터 모든 노조 업무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의 곰 생활을 끝내고 사람으로 돌아온 건 감사한 일이었다. 

하긴, 남편은 사람 되어 출근 했다지만 아직 집에는 말같은 중학생 큰 애와 비글같은 작은 아이가 집안을 휘젓고 있다. 내가 직박구리가 되는 상상을 했다가, 그리 되지 않은 게 크게 다행한 일이다 싶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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