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지나서야 제자리 찾는 제1연평해전
24년 지나서야 제자리 찾는 제1연평해전
  • 김명서
  • 승인 2023.06.24 16:45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25 이후 북한 정규군에 대승 거둔 유일한 전투…정치 셈법에 ‘저평가’

[김명서 칼럼]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렸다”. 윤석열 대통령이 현충일 기념사에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 영웅들을 더 잘 살피고 예우할 것” “제복 입은 영웅이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라는 다짐도 곁들였다.

‘품격’ ‘영웅’ ‘예우’ ‘제복’ 등. 거칠고 숨가뿐 일상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운 ‘폼 나는’ 단어들이다. “누구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달렸다”라는 표현은  듣자마자 머리에 콱 박힐 만큼 호소력이 컸다. 이런 키워드와 문구들로 씨줄날줄을 엮었으니 좋을 수밖에…오랜 시간 방치했던 소중한 존재를 미안한 마음으로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념사 특유의 구태의연함이나 무미건조함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대통령실이 파악한 여론의 평가도 대체로 비슷했던 모양이다. 윤 대통령은 이후 ‘6월 보훈의 달’ 관련 행사에서 똑 같거나 비슷한 발언을 되풀이했다. 지난 13일 국무회의 때 그랬고, 14일 대통령실의 국가 유공자 및 보훈가족 초청 오찬에서도 그랬다. 반복할수록 여론은 더 좋아질 것으로 판단한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기억’과 ‘예우’를 위한 조치들도 이 달 들어 잇따라 나왔다.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참전 용사 5만1000명에게 ‘영웅의 제목’을 선물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4일 유공자 초청 오찬에 제1연평해전 참전 장병들이 참석한 것이 무엇보다 인상 깊었다. 이들이 대통령실 행사에 초대받은 것은 24년만에 처음이다. 남북 관계를 둘러싼 정치적 셈법으로 올바른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북한 해군 14분 만에 처절하게 패배…“디지털과 아날로그 차이”

제1연평해전은 김대중 정부 2년 차인 1999년 6월 15일 우리 해군이 서해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해군에 압승을 거둔 전투다. 불과 14분 만에 북한 어뢰정 1척을 격침하고 경비정 5척을 대파시켰다. 북한군 30여명이 사망했고 7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우리 해군은 고속정 1척과 초계함 1척의 선체 일부가 파손되고 장병 9명이 경상을 입는 데 그쳤다.

필자는 해전 발생 얼마 후 중앙언론사 국방‧안보 관련 데스크 몇 명과 함께 국방부장관을 거쳐 안보관련 중책을 맡고 있던 ‘고위 관계자’에게서 일련의 과정을 설명 듣는 기회를 가졌었다.

당시 긴장 상황은 9일 전부터 북한 경비정들이 꽃게잡이 어선들과 함께  NLL 남쪽 해역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됐다. 양측 해군 간에는 며칠에 걸쳐 서로 선체를 충돌시키는 ‘밀어내기식’ 공방이 반복됐다.

그리고 6월15일 오전. 북한 함정 7척이 다시 NLL을 넘어왔고 우리 해군은 고속정 6척 등을 동원, 같은 방식으로 맞섰다. 한 순간 북한 경비정이 소총 사격과 함께 25밀리 기관포를 발사했다. 우리 해군은 고속정의 40밀리 기관포와 초계함2척의 76밀리 함포로 응사했다.

양측간 함정 수도 엇비슷했고, ‘선빵’까지 날렸는데도 북한 해군은 어떻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을까. 고위 관계자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라고 요약해 설명했다.

우리 함정들은 컴퓨터시스템으로 북한 함정을 자동 겨냥해 정밀사격을 퍼부었다. 각 함정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역할분담’도 순식간에 이뤄졌다. 전투가 시작되자 각자 맡은 북한 함정을 향해 집중 사격을 가했다. 

반면 북한 해군은 어설펐다. 고위 관계자는 “전투 상황에서 표적을 향해 기관포를 손으로 돌리는 등 대응 속도에서 상대가 안 됐다”고 전했다. 포신을 손으로 움직이는 몸짓을 섞어 설명하던 고위 관계자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불과 14분 만에 북한 해군이 처참하게 패배한 이유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고위 관계자의 이러한 설명은 기사화되지 않았다. 보도를 말라는 ‘엠바고’를 건데다 해전 발생 10여일이 지나면서 ‘김이 빠져버린’, 즉 시의성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정치적 입김에 호국‧애국‧헌신이 홀대 받는 일 없어야"

제1연평해전은 6.25 전쟁 이후 우리 군이 북한 정규군과 맞붙어 대승을 거둔 유일한 전투다. 그런데도 정부는 처음부터 그 의미와 배경, 구체적인 경위를 알리는 데 소극적이었다. 대북 화해와 협력을 앞세운 ‘햇볕정책’ 기조 때문이었다. 북한을 자극하기 싫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부적절한 평가와 예우는 3년 후인 2002년 6월 29일 발생한 제2연평해전으로 이어졌다. 영화 ‘연평해전’으로 소개된 그대로 우리 장병들은 수적 열세 속에서도 목숨을 다해 적을 물리쳤다. 전차용 대포로 무장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에 우리군은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다쳤다. 그러나 전사자 영결식은 국가 주도가 아닌 해군장으로 간단히 치러졌다. 12년이 지나서야 ‘승전’으로 공식 평가 받았지만 한동안은 패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치부하기도 했다.

1‧2차 연평해전은 어찌 보면 정치적 이해와 논쟁의 피해자다.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격리되기도 했고, 오랜 기간 잊혀졌다. 그렇다고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됐는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다 수시로 미사일을 쏘아대고, 강력한 경고로 맞대응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군은 누구를 향해 싸우는지가 불분명한 심각한 정체성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무장해제’나 다름없이 무기력하다는 비판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제 안보와 국방, 보훈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대응과 조치는 ‘비정상의 정상화’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다. 더 이상 정치적 입김에 호국과 애국, 헌신이라는 절대 가치가 홀대 받고 따돌림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은 현충일 행사 등에 ‘121879’가 새겨진 태극기를 가슴에 달아 주목받기도 했다. 가족에게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 12만1879명을 기억하자며 국가보훈부가 제작했다고 한다. 찡하고, 뭉클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서울이코미디어
  • 등록번호 : 서울 아 03055
  • 등록일자 : 2014-03-21
  • 제호 : 서울이코노미뉴스
  • 부회장 : 김명서
  • 대표·편집국장 : 박선화
  • 발행인·편집인 : 박미연
  • 주소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1107호(여의도동, 삼도빌딩)
  • 발행일자 : 2014-04-16
  • 대표전화 : 02-3775-4176
  • 팩스 : 02-3775-4177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미연
  • 서울이코노미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서울이코노미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eouleconews@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