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DNA'...잇단 흉흉한 사건 속 배려와 포용의 미학
'여왕의 DNA'...잇단 흉흉한 사건 속 배려와 포용의 미학
  • 이영미
  • 승인 2023.08.22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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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천천히 배우고 자라가는 것...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럴 때가 된 듯

[이영미 칼럼] 친정 아버지가 심부름을 시키셨다.

"동네 단골 이발소가 근처로 옮겼으니 벽걸이 시계 하나 사다 선물해라."

단골 이발소 아저씨는 아주 오래 전부터 우리 옆집에서 이발소 운영을 하던 분으로 이사를 가셨다 10년 전에 다시 이 동네로 오셔서 최근에 이발소를 다시 새로 옮기셨다. 아버지가 부탁하신 큰 벽시계와 함께 휴지 한 상자를 들고 이발소에 찾아갔다.

이발하던 손님 하나가 면도 거품을 입에 묻힌 채 한마디 했다.

“이 동네 참 살기 괜찮은 데네!”

아버지가 보여준 감사와 친절은 그 세대의 덕이라 치고 나 역시 평소 주위에 선심을 많이 쓰는 편이기는 하다.

새해 첫날에는 떡국을 끓여 아파트 경비실에 돌린다. 음료수를 사서 교통 도우미 봉사자께도 드린다. 건물 청소하시는 분들의 휴게실에 음료와 빵을 가져다 놓았다. 택배나 우체국 직원께 드리려고 마스크와 캔커피를 박스로 주문했다가, 감사 편지와 함께 현관 앞에 내놓곤 한다.

한 번은 아이 하원 길에 학교 보안관님께 음료수를 내밀었다. 비좁고 복잡해 운행과 주차가 어려운 곳이지만, 아이 하원을 위해 차량이 필수였던 곳이다. 애 쓰시는 학교 보안관님께 감사 표시를 했을 뿐이었다.

눈에 잘 안 띄는 곳에서 쉼 없이 애쓰는 분들, 그분들의 땀방울

그런데 그 다음부터 나의 작은 미니 전기차는 거의 회장급 의전을 받았다. 내가 등장하면 보안관님이 먼저 나오셔서 인파를 정리해 주셨다. 거짓말 조금 보태 사람들이 홍해 갈라지듯 하며 병사들이 이열 종대로 ‘받들어 총’ 하며 서서 의전 행사가 펼쳐지는 환각이 보일 정도였다.

세상은 눈에 잘 안 띄는 곳에서 쉼 없이 애쓰는 분들, 그분들의 땀방울이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힘이요 원동력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그분들께 뭐라도 내미는 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그런 곳에 손을 내미는 게 또 다른 우리를 챙기는 일이요 힘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 소위 고위층이나 눈에 띄는 높은 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어 봐야 하는 것도 힘들고 가 닿지도 않는다. 

내가 달리 착해서가 아니다. 학교나 기관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 즉 문 앞이나 계단에서 만날 수 있는 경비, 청소노동자분들에게 잘해드리는 것이 의외로 내가 편할 수 있겠다는 나름의 계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분들에게 베푼 친절은 몇 배로 되돌아오곤 했다. 대체로 주차는 편하고 좋은 자리로 안내 받는다. 등,하교시 교통 도우미의 대접은 우리 모자에게 더 특별해지곤 한다. 

세상 삭막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고 인간사 본래 경쟁의 연속

택배는 언제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전달되고, 혹시라도 내 실수로 반품 보낼 게 늦어지거나 해도 늘 너그러이 용서를 받곤 하는 일. 나의 호칭은 ‘아줌마’가 아닌 14동 사모님이 되었다. 배려를 받으면서 일종의 여왕 대접을 받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속에 간혹 안 그런 사람들이 있다. 비슷하거나 나보다 아래에 있다 싶으면 얄팍한 지위를 이용해 내리누르고 협박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때로 깜짝깜짝 놀란다. 그런자가 어떻게 왕의 DNA를 물려줄 수 있는 건지 놀랍다.

세상 삭막한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고 인간사 본래 경쟁의 연속이라지만 최근의 흉흉한 사건들은 너무나 놀랍다. 골방에서 악플 달며 이를 갈거나 칼을 들고 뛰쳐나오는 청춘들, 그들이 억눌린 사회의 이면에는 서로를 잡아먹고 밀어내는 잔인한 사회 구조가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흉흉한 세상에 욕설의 칼날을 세우는 사람들도 봤다. 하지만 내가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걱정 속에서 서로 더 조심하고 배워야 할 것들을 챙기는 사람도 많이 봤다. 

유행어가 되어버려 좀 뭣하지만, 왕의 DNA는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한다. 선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천천히 배우고 자라가는 것.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여왕의 DNA를 만들어가고 나누어 가지는 것, 이제는 그럴 때가 아닌가 한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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