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은 ‘사회폭력’의 싹, ‘아빠찬스’는 ‘불공정’의 싹
‘학폭’은 ‘사회폭력’의 싹, ‘아빠찬스’는 ‘불공정’의 싹
  • 윤영호
  • 승인 2023.09.0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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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난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어느 특정인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

[윤영호 칼럼] 묻지 마 폭력으로 세상이 흉흉하다. 대중을 상대로 해악을 고지하는 협박 글이 SNS상에 끊이지 않고 있다. 지하철역이나 공원, 심지어 학교에까지 안전지대를 특정하기 어렵다. 호신용 장비를 지참하고 사주경계라도 하면서 길을 걸어야 할 판이다. 비교적 치안이 안전하다는 대한민국이 치안 불안국가가 된 셈이다.

잇따른 묻지 마 살인과 폭력사건이후, 우리나라가 실질적으로는 사형 미 집행 국가임에도 사형제도의 부활을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을 많았다. 사회적 강력범죄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어떠한 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급기야 경찰관에게 위험 현장에서 약화된 권총이 사용되도록 공권력 실행을 강화하는 조치가 발표되었고, 한 동안 사용되지 않던 사용집행 시설을 점검하라는 법무부 장관의 지시까지 내려졌다. 물론 범죄자들의 협박에 대한 반작용으로 위협적 조치가 의도되었다고 추정된다.

범인을 잡고보면, 마약 투여 자, 폭력 전과자, 조현병이나 우울증 같은 중증 정신진환자 들도 있지만, 환자 여부와 관계없이 적어도 폭력 경험자들이 주를 이룬다. 살인사건 같은 강력범죄는 평범한 사람이 우발적으로 저지르기는 어렵다. 범인 스스로가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동기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하는 것은 감형을 받기위한 진술요령의 기본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살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요즘 정상적으로 성장한 평범한 아이들은 치킨요리는 즐겨먹어도 살아있는 닭 한 마리조차 직접 잡아본 경험이 없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폭력이나 강력범죄는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원인이 반드시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폭력도 습관이기 때문이다. 이 폭력의 습관이 도를 넘으면 살인에까지 이른다.

그렇다면 이 폭력의 습관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 그것은 대부분 어린시절 학교폭력에서 시작된다. 학교폭력이 자라서 가정폭력이 되고, 또 사회폭력으로 나타난다. 이는 인성이 착하거나 아이큐가 높은 것과 무관하다. 이성이 마비되는 현상은 조건만 형성되면 누구라도 예외를 장담할 수 없다. 관련된 유사실험의 예를 상기해 본다.

폭력의 습관은 초반부터 중지시켜야

환경이 인간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실험이 소위 ‘스탠퍼드 감옥실험’이다. 1971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수행된 사회심리학 연구로, 몸과 정신이 건강하고 정상적인 성인남성 24명을 무작위로 나누어 스탠퍼드 대학교 지하실에 설치한 모의 감옥에서 교도관과 수감죄수의 역할을 하는 실험이었다.

실험이 진행됨에 따라 교도관역할의 일부 참가자는 점차 권위남용이 가혹한 폭력으로 나타났고, 수감자들은 억압적인 환경에서 심한 스트레스로 정신적 붕괴를 겪어 실험에서 중도 하차했다. 원래 계획은 14일동안 실험 일정이었지만 6일만에 조기 종료되었다는 사실은 참가자들 간의 갈등과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그럴만한 환경이 조성되면 누구나 폭력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기에, 폭력의 습관은 초반부터 중지시켜야 한다. 그러기에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메시지를 자녀나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전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의 폭력적인 표현은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폭력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범죄다” 라고하는 인식을 어린시절부터 분명하게 각인 시켜줘야 한다. 그것이 민주시민으로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기본필수교육이다.

이러한 기본교육에 찬 물을 끼였는 사회병리현상이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소위 ‘아빠찬스’다. 원래 〈**찬스〉 라는 말은 학생들의 공부실력을 겨루는 ‘황금종을 울려라’ 또는 ‘장학 퀴즈’ 같은 방송프로그램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중, 누구나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출구의 기회를 부여해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회이므로 특혜성 시비가 되는 〈아빠찬스〉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러므로 〈아빠찬스〉는 불공정 찬스요 폭력찬스다. 특혜의 기회가 용인되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이러한 특혜성 찬스가 성적왜곡에 관여하는 것이나, 폭력무마에 사용되는 것이나 동근이지(同根異枝 : 같은 뿌리에 다른 가지)이다. 모두 정의에 대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결국 인간성과 교육의 문제

정의는 사랑과 배치되지 않는다. 사랑과 정의는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의는 그 누구를 억압하는 수단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사랑이다.

권력이나 재력이나 사회적 영향력으로부터 비롯되는 특혜성 찬스는 정의의 결핍이며, 그정의의 씨앗은 바로 ‘정직’이다. 정직하지 않으면 공정할 수 없고 공정의 근저에는 언제나 ‘정직의 DNA’ 가 서려있기 때문이다. 음식 맛을 내는 기본재료가 소금이라면, 인간 다움의 기본 맛은 정직과 사랑이다.

부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떠한 종류의 사람이라도 사회에 화근거리가 된다는 인지심리학자의 분석이 있다. 부정직하며 외형적인 사람이면 동네방네 사기 치고 다닌다. 부정적하며 내향적인 사람은 속으로 음모를 꾸민다.

부정적하며 예민한 사람은 온갖 가해(갑질)를 하면서도 사실을 왜곡하며 피해자(을) 코스프레를 한다. 부정직하며 우둔한 사람은 자신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기에 왜곡에 묻혀 산다.

폭력은 결국 인간성과 교육의 문제다. 부정직이 불공정을 부르고, 불공정이 아빠찬스를 행사하며, 아빠찬스가 자녀의 교육을 망친다. 잘못된 교육이 폭력을 양산하며, 폭력이 사회범죄로 성장한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는 그 누구도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없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 폭력의 습관을 원천적으로 막는 교육에 내 자녀 네 자녀가 따로 없다.

그러므로 폭력이 난무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어느 특정인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다.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한 기본배경이 ‘평등한 법’ ‘공정한 적용’이다. 폭력을 방조하는 한,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세상은 불안과 불공정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학생과 선생, 근로자와 사용자, 고객과 주인, 또는 어떠한 사회불만자를 막론하고, 정의와 공정에 배치되는 폭력은 명분 없는 만용(蠻勇)일 뿐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영호<yhy321321@gmail.com>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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