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겨운 외모 경쟁과 예쁜 딸로 살아남는다는 것
눈물겨운 외모 경쟁과 예쁜 딸로 살아남는다는 것
  • 이영미
  • 승인 2023.09.2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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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 때문에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한 친구...아이들아, 미디어 따위에 흔들리지 말아라

[이영미 칼럼]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얼굴이 마냥 좋지 못했다. 30년 지기 친구지만 근래 들어 힘이 들어 보였다.

자식이 밥을 못 먹는다는 그 가슴 찢어지는 일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단다. 중학교 3학년인 친구 딸은 모범생이 그림 천재다. 그림 뿐 아니라 글도 잘 쓰고 연출력 까지 좋아서 직접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공모전에서 받은 상과 트로피가 장식장을 채울 정도였다. 

만화와 애니를 더 공부한 뒤 유학 계획까지 차곡차곡 세워 놓은 야무진 아이였다.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천재 작가로 통하는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했다.

작년인가 부터 아이가 운동을 시작하면서 오트밀 같은 다이어트식을 먹기 시작하더니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문제는 너무 심해졌다는 거다. 하필 치아 교정과 소화기 문제, 성장기의 체질 변화까지 겹친 데다, 천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우울해하고 힘들어하면서 거식증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무조건 굶은 것도 아니라서 처음엔 사춘기 아이의 우울함인가 싶었는데, 병원에 데리고 가 보니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그냥 다이어트가 아니라 요즘 문제인 ‘개말라’ 상태로 사진으로 본 모습은 놀라울 정도였다. 160cm 정도의 키에 겨우 33kg으로 정상 체중까지 20kg이상 모자란 그야말로 뼈만 남은 상태였다. 

딸이 다섯이던 우리 집은 옷 전쟁을 무척 많이 해

소화기관이 나빠져서 갑자기 식사량을 늘릴 수도 없어 식사 때마다 딸과 전쟁을 하느라 집안 분위기가 그야말로 난장판이라고 했다. 자식 잘 먹어 건강한 걸 보는 일이야 모든 부모가 바라 마지않는 것이지만 아이의 입장을 들어보니 마냥 뭐 수만은 없는 사연이 있었다.

큰아이 밑으로 작은딸이 있는데, 인형같이 예쁘고 애교 많은 아이였다. 큰 아이는 똘똘하고 다재다능한 어린 여걸이었다. 사람들은 그 집을 두고, 공부 잘하고 재능 있는 큰 애에 예쁘고 깜찍한 둘째에, 다 가졌다고 칭찬을 했다. 멀리서 듣자면 하나도 이의 없는 칭찬이었다. 그런데 큰 애는 또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도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았고, 특히 부모는 단 한번도 자기에게 예쁘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거였다. 너는 영리한 모범생에 재주꾼이 아니냐는 소리는 큰 아이에겐 듣고 싶지 않은 칭찬이었다. 결국 예쁘지 않다는 말을 돌려 말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딸이 다섯이던 우리 집은 옷 전쟁을 무척 많이 했다. 같이 입으라고 부모님이 사 준 옷은 누가 먼저 입네 마네 하다 싸우기 일쑤였고, 졸업 기념으로 백화점 한번 갔다가 머리채 잡은 적도 있다. 나보다 훨씬 날씬했던 언니들은 내가 빌려 입기라도 하면 늘어나서 버린다고 손도 못 대게 했다. 

몰래 입어보고 싸우고 울기도 많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 뿐이랴 다이어트 한다고 나한테 대신 간식을 먹이기도 했다. 한 번은, 아빠 회사 개업식에 가족들 모두가 차려 입고 갔는데 나는 맞는 옷이 없어 보충수업을 핑계 대고 빠진 적도 있었다.

우리 성장기 아이들은 당연히 외모 스트레스 받아

세상 모든 형제 자매들은 서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딸들은 눈물겨운 외모 경쟁을 한다. 태어나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있는 걸 본 동생, 그리고 엄마 품에만 있다가 나를 밀어내고 등장한 누군가를 본 언니. 이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이해하다 성장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성장통은 때로 가족과 엄마 가 슴을 후벼 판다. 아이들은 당연히 외모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왜곡된 정보는 이걸 더 부추기고 자본은 그걸 이용한다. 

아마 예민한 친구 딸이 그 영향을 안 받았을리는 없다. 거기다가 애가 크면서 겪는 체질 변화, 그리고 치아 교정으로 음식 소화에도 문제가 생겨, 그 스트레스가 겹친 셈이다.

딸아이 때문에 병원과 한의원을 전전한 친구는 바로 얼마 전에 그제사 아이가 자기 모습을 되돌아보고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해결의 작은 실마리라도 보이니 다행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안쓰러웠다.

아이들아, 너희 모두는 너무 예쁘고 소중해. 미디어 따위에 흔들리지 말고 꿋꿋이 자라라. 아마도 친구의 마음도 이와 같을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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