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정치는 지역정당의 손으로
지역정치는 지역정당의 손으로
  • 정기석
  • 승인 2023.10.0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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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석 칼럼] 엄연히 민주공화국인 한국에서 지역정당은 허용되지 않는다. 정당법에 그렇게 규정이 되어있다. 헌법재판소도 그러한 규정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을 내렸다. 최근 지역정당을 허용하지 않는 정당법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4(합헌) 대 5(위헌)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많았지만 위헌 결정에 필요한 정족수 6명이 채워지지 않았다. 정당법 3조, 4조, 17조 등이 문제다. 정당의 구성을 규정하는 3조는 ‘정당은 수도에 소재하는 중앙당과 특별시·광역시·도에 각각 소재하는 시·도당으로 구성한다’고 명시한다. 4조 1항에서는 ‘정당은 중앙당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함으로써 성립한다’고 규정한다.

특히 소위 ‘전국정당조항’으로 불리는 17조는 ‘정당은 5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두 ‘지역정당’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조항들이다. 지역정당을 추진하는 이들이 이 같은 전국정당조항의 정당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하지만 헌재는 이런 논리를 들어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전국정당조항은 정당이 특정 지역에 편중되지 않고 전국적인 규모의 구성과 조직을 갖춰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균형 있게 집약‧결집해 국가정책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정당에 부여된 기능인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를 실현하고자 하는 것.

전국정당조항은 국민의 정치참여 권리를 침해

심지어 헌재는 지역적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가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의 정치현실에서는 특히 문제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정당을 허용할 경우 지역주의를 심화시키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지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정당의 구성과 조직의 요건을 정함에 있어 전국적인 규모를 확보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주장을 폈다. 반문한다. 현재 한국정치의 고질적 문제인 연고지역 기반의 양대 전국정당이 과연 형식적으로 전국적 규모가 아니라서 문제가 되었는가.

반면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합리적이다. 거대 양당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전국정당조항은 지역정당이나 군소정당, 신생정당이 정치영역에 진입할 수 없도록 높은 장벽을 세우고 있다는 의견이다. 각 지역 현안에 대한 정치적 의사를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을 배제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차단할 위험이 있다고 일갈했다.

이 같은 위헌 의견을 들어보면, 헌법 취지를 고려할 때 정당의 설립, 조직, 활동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나 침해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는 명확한 취지다. 나아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의 참여’라는 정당의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특히 17조의 전국정당조항으로 인해 모든 정당에 대해 일률적으로 전국 규모의 조직을 요구해 지역정당이나 군소정당, 신생정당이 원천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게 한국 정치의 현실이다. 전국정당조항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정당의 자유, 국민의 정치참여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당법 18조 1항에서 ‘시·도당은 1000인 이상의 당원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한 ‘법정당원수조항’도 위헌성이 엿보인다. 기반이 취약하고 세력이 미약한 신생정당의 창당을 현저히 어렵게 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재는 이에 대해서도 합헌 결정을 내렸다. 법정당원수조항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 참여를 실현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공고한 조직의 최소한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오직 외형과 형식에 치우친 낮은 편견으로 읽힌다.

지역정당, 군소·신생정당 풀뿌리 민주주의 토대

글로벌스탠더드에 못 미치는 정치후진국으로 평가되는 한국에서 이제, 전국정당조항 등 국민의 정치참여 권리 및 자유를 침해하는 정당법은 손질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국정당의 장벽을 규정하는 현행 정당법으로는 거대 양당체제가 고착된 한국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 오히려 연고지역을 기반으로 삼아온 한국식 거대 양당체제야말로 지역정치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다행히 최근 들어 정계, 학계 일각에서는 ‘정당법’ 개정을 통한 정당의 다양화로 ‘지역정당·의제정당’이 해법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역정당과 의제정당의 활동을 폭넓게 허용해야 지역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지방분권과 지방자치도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정당’은 지역문제의 해결 혹은 지역적 의사형성 참여를 목적으로 하는 ‘정치적 결사체’다. 중앙정치와 별개로 지역민들의 의제를 충실히 반영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풀뿌리 민주주의’ 현실적인 실천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려면 지역의 일반주민들이 제도권 정치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와 통로가 확보되어야 한다.

가령 지역정당은 규모가 작지만, 지역주민들과 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중앙에서 놓치기 쉬운 지역 현안들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다. 다만 1962년 제정된 정당법이 ‘수도 소재 중앙당’과 ‘광역시·도에 일정 이상의 당원이 등록된 시도당을 둘 것’이라는 전국정당 조항으로 지역정당 창당을 사실상 차단하고 있는 상태일 뿐.

결국 지역정당이 가능해야 지방선거에서나마 중앙정치에 예속된 현안에서 벗어나 지역현안과 과제에 충실한 정치지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인구감소, 지방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적대적 양당체제의 중앙정치의 대안으로 지역정당, 지역정치가 보장되어야 하는 명백한 명분이자 이유다.

정당법 제2조에서는 ‘정당’을 이렇게 정의하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자발적 조직. 전국정당이어야만 하나? 지역정당은 못할 일인가?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정기석(tourmali@hanmail.net)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경상국립대 창업대학원 6차산업학과 비전임교원

前 국회정책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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