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들의 또다른 세계와 '아스피' 승일 씨의 이야기
자폐인들의 또다른 세계와 '아스피' 승일 씨의 이야기
  • 이영미
  • 승인 2023.10.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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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피, 자폐의 일종이지만 지능과 인지, 언어 능력이 정상 범위에 있어서 장애등급 받기 어려워

[이영미 칼럼] “안녕하세요.”

승일씨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리에 앉아 내 소개를 하자 자신의 이름을 종이에 한자로 적어 뜻풀이를 설명해주었다. 호적의 이름과 다른 자신의 이름, 그리고 인터넷 까페 아스퍼거인 모임에서 불리는  한자 이름과 뜻이 각기 달랐다. 아스피란 아스퍼거인들이 자신들을 이르는 말이다.

아스퍼거란 자폐의 일종으로 분류되는데, 지능과 인지, 언어 능력이 정상 범위에 있거나 보통 사람보다 높기 때문에 장애 등급을 받기 어렵다. 승일씨는 장애 등급을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스피가 많다고 한다.

일상 생활이 가능하지만 농담을 이해 못하고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등 오해와 갈등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취업이나 사회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대부분이다. 대학을 마쳐도 직장 생활이 어려운 이유는 면접에서 떨어지거나, 입사해도 회사 문화에 적응이 어려워 스스로 그만두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자폐인으로 교수가 되어 화제인 윤은호교수나, ‘우영우’ 같은 사람은 극히 드문 게 현실이다. ‘마스킹’이라는 말은 자폐인들이 자신들의 본성을 감추고 노력하여 보통의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훈련하면 그 ‘마스킹’을 할 수는 있지만,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 반복되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스피들은 특히 언어능력에 문제는 없지만 대화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많다. 내가 질문을 하면 승일씨도 5초에서 10초 정도 생각을 하고 대답했다. 

승일씨는 숫자를 이야기하며 너무나 해맑은 얼굴 

자신들만의 독특한 사고체계가 있는데 특히 숫자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 많다. 승일씨에게 숫자와 수열을 좋아하냐고 물으니 얼굴이 환해졌다. 암산 능력이 뛰어나냐고 물으니, 미성년자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렇게 빠르지는 않지만 숫자를 좋아한다면서 무언가를 꺼냈다. 잠시 후 승일씨는 가지고 온 가방에서 지폐 다발을 보여주었다. 빳빳한 신권으로 천원짜리 뭉칫돈을 보여주었다.

“일련번호가 있어요. 그 일련번호를 순서대로 모아두고 보는 게 취미에요.”

취미 치고는 참으로 독특하다 싶었지만 승일씨는 숫자를 이야기하며 너무나 해맑은 얼굴을 했다. 그런 취미 외에 사람도 만나고 싶고, 중국 여행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벽이 너무 높다고 했다. 지금 갖고 있는 자산에 비해 부채 비율이 높아서라고 했다. 

그는 자신보다 더한 사례들도 있다고 밝혔다. 아스퍼거가 있는 자신의 친구 하나는 최저 시급을 받고 장애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도서관 사서 보조를 하고 있지만 규정상 하루 4시간 밖에 못한다고 한다. 다른 일과 겸직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생활비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 한 명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최저 시급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받는다고 한다. 승일씨가 그 친구에게 그래도 법정 급여는 받도록 항의하든지 신고를 하라고 했지만 그게 어렵다고 했다. 

노동부에 신고해도 노동부는 조정을 하도록 유도하는데 현실적으로 조정과 협의는 어렵고, 민사 소송을 하라고 하니 친구가 펄쩍 뛰었다고 한다. 아무도 자신을 써 주지 않는데도 선뜻 일을 시켜주시는 지금 사장님을 절대로 배신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단다. 

안타까운 마음에 승일씨는 그들을 위해 까페에 자료와 경험이 될 글도 쓰고 자료도 올린다고 했다. 정작 그런 승일씨는 무슨 일을 하냐고 묻자, 사실은 아파트 관리 보조 등 비정기적인 일을 하고는 있지만 생활비는 모자란다고 했다. 별 수 없이 부모님 집에 얹혀 사는 수 밖에 없다며 웃었다.

아스퍼거인들이 목소리 내기 시작한지 얼마 안돼

그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얘기들이죠”라며 웃음을 지었다. 만나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어색한 것도 어려운 것도 사라지고 어느새 농담을 주고 받으며 웃고 있었다. 승일씨가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부터는.

사실상 아스퍼거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들이 가진 능력이 저 평가 받을 뿐 아니라, 점수가 높아도 면접 기회조차 주지 않는 등 배척되기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는 데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금만 얘기해 보면, 일단 일을 시켜보면, 맞는 업무를 배정해주면 보통 사람보다 세 배 이상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자신들을 장애인이나 환자로 부르지 말고 ‘신경 다양성인’이라고 불러 달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보다 질서와 규칙을 정형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신경 정형인’으로 부른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안타까웠다. 우리 아이가 그렇게 수십 시간을 배우고 익히며 자라나도 나중에 똑같이 불이익 받고 배척 받게 될 것 같아서였다.

승일씨는 그냥 웃었다. 친구들을 위해 모임을 만들고 참여하면서 의견을 나눈다고 했다. 최근에 요양 보호사 자격증을 땄는데, 곧 장애인 활동 보조사 자격증도 준비한다고 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기 때문에 실행에는 시간이 걸린단다.

‘승부수’를 던진다고 하면서, 바둑 유단자인 그는 이 말이 본래 바둑 용어라고 설명을 하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 보조사를 왜 하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되고 싶어서요.”

승일씨는 그렇게 말하고 환하게 웃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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