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역사 패러독스를 반면교사로 삼자
중동역사 패러독스를 반면교사로 삼자
  • 윤영호
  • 승인 2023.11.0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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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에 제동 안걸려...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주변국들의 거리도 여전히 멀어

[윤영호 칼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분쟁에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고 있다. 무고한 생명이 속절없이 죽어 나가도, 그들의 생활터전이 송두리채 무너지고 지구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유엔이 엄연히 존재해도, 세계경찰국을 자처하는 패권국들이 있어도 분쟁을 중단시킬 단호한 조치를 쉽게 취하지 못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중동은 지구촌의 화약고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닌 듯싶다.

이런 현실을 보면, 이해관계보다 더 무모한 것이 자기 독선의 함정이고, 역사의 패러독스(paradox)}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중동지역의 데탕트(détente, 화해무드)가 자리잡을 수 없는 사례를 보면서 이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왜 그럴까?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는 중동지역의 고질적 특성이 국가와 민족, 또는 종교간에 특정 정체성과 특정 가치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가치 하나를 가지고 다양한 모든 가치들을 쓰나미처럼 삼켜버린다. 전후좌우 사정과 이어지는 맥락도 전혀 고려되지 않는 ‘묻지마 독선’이다. 철옹성 같은 자기들만의 연대에 갇혀서 전체를 보지 못하는 편향적 세계관이다.

이런 것들이 그들에게는 크고 작은 하나의 연대의식이다. 그들은 정체성에 따른 연대의식을 앗사비야(Assabiyyah)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정체성 연대의식들이 겹겹이 따로 따로 작동하기 때문에 문제가 하나로 마감되지 못하고 있다. 당사자간 이해관계가 조율되어도, 가문정체성(카빌리야,Qabilliyyah)이 지역화평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고, 국가정체성(와따니야,Wataniyyah)이 공동가치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이해관계에 있는 상대국가와 국가정상화 무드가 조성될라 치면, 아랍문화 정체성(까우미야,Qawmiyyah)이나 종교적사상이 그 흐름을 뒤덮기도 한다. 그들의 문화속에는 이토록 복잡하고 견고한 여러 파라독스들이 겹겹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주변국들의 정서는 어떤가?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가족이라는 말 자체도 없어져야 

한.중.일의 수도는 비행거리로 2시간대로 갈 수 있는 근거리이며 무역량도 최고로 늘어나고 사람왕래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감정적 거리는 여전히 멀기만 하다.

경제협력규모가 더 커지고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어도 역사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서로 반목하는 현상을 ‘아시아 패러독스(Asia Paradox)’라고 한다. 한중일이 갖고 있는 자기나라 만의 독특한 ‘앗사비야’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한.중,일간의 인접국가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 국내 사정은 어떤가?

영남과 호남의 정서가 극명하고, 여당과 야당의 대립이 극명하다. 본래부터 그런가.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는 우리나라는 이제 한 가족이 마을 전체를 구성하는 집성촌은 없다. 직업에 따라 혹은 결혼을 통해서 모두가 섞여 사는 국가가 되었다. 모두가 하루 생활권에 있는 한 공동체라고 봐야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다문화가족이라는 말 자체도 없어져야 한다. 외국 혈통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사람과 더불어 자라났고, 그래서 외양만 다르지 완전한 한국사람도 있다. 비근한 예로 ‘국민의 힘 혁신위, 인요한 위원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의 출현은 기존경계를 허무는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더구나 출산율 저하로 인구소멸, 국가소멸을 우려하는 것이 현실이 되어, 차선책으로 노동력확보를 위해 젊은 층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필요에 따라 이민청이 거론되고 있는 마당에 언제까지 폐쇄적인 끼리끼리 연대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것인가?

과거 고구려, 신라, 백제의 후예라고 고집하여 연대의식으로 묶어지는 사례가 지금도 그 효용성이 있던가? 빗장을 걸어 잠그고 쇄국정치를 했던 우리의 역사가 얼마나 우리를 근대국가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되,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가 끊어야

과거에 집착하는 고립된 연대의식이 사라진 사례도 있다. 고집스런 과거역사 파라독스가 극복된 사례도 있다. 2차대전 이후 철 천지 원수였던 독일과 프랑스가 지금은 같은 화폐(유로화)를 함께 쓰는 나라가 되었다. 한때는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관계였지만 석탄 철강공동체를 만들면서 하나의 연합체로 상생하면서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국제정치나 국내정치나를 막론하고 패거리 문화와 조장된 색깔 연대의식(앗사비야)은 합리적 사고와 이성을 마비시킨다. 중동지역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분열을 고착화시킨다. 허구헌날 싸움질이 멈춰지지 않도록 펌프질하는 동인으로 작동한다. 화평과 상생으로 수렴하는 다리를 근본적으로 끊어버린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기가 막히게 잘 이용하는 선수들이 있다. 바로 정치 기술자들이다. 그것도 좋게 표현해서 그렇지 엄밀히 이기적인 선동 기술자들이다.

이제 총선철이 다가오고 있다. 우매한 유권자는 패거리 형성 전문가들의 선동노래 리듬에 무모하게 놀아난다. 이간질하는 그물에 스스로 들어가 팬덤의 한 부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21세기를 사는 우리 유권자가 말꼬리를 잡고 몸통을 흔들어대는 치졸함에 언제까지 이용당할 것인가? 선거 한 철에는, 한 가족처럼 강조해도, 선거 끝난 후, 논공행상(論功行賞) 할 때를 보라. 그 들만의 리그라는 것을 한 두 번 봤는가?

이제 치열하게 논쟁하는 가운데서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되, 악순환의 고리를 우리 세대에서 끊고 선순환의 고리를 만들어 가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을 왜곡하며 스스로 억울한 척하며 편들어 달라고 하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분별하는 안목도 키워야 할 때가 되었다.

극단적 선동에 눈이 멀고 특정 가치와 패거리 문화에 갇히게 되면, 지금까지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중동처럼, 하나의 가치가 그동안의 맥락을 끊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어렵게 형성되었던 상생 조화의 역사가 팬덤회오리속에서 증발된다. 미사일 폭탄 융단폭격이 도시의 물질문명을 과거로 되돌리듯, 이기적인 연대의식이 정신문화와 시민의식을 과거로 회귀시킨다.

우리의 모든 삶과 희비극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러기에 역사와 맥락을 단절시키는 ‘묻지마 가치 연대의식’은 이어진 맥락과 전후좌우 사정을 매몰시킨다. 그럴 경우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을 수 없고, 교훈이 있어도 활용할 수 없다.

인과(因果)와 맥락(脈絡)을 통해서 교훈을 얻고, 그 교훈을 통해서 발전하는 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아닌가?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영호<yhy321321@gmail.com>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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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11-03 21:59:30
이슬람이나 조선족 쓰레기들이 몰려오느니 그냥 얌전히 망하자 니미 씹 유럽 꼬라지 보고도 말같잖은 소리하고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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