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 ‘역시나’…“성에 안 차도 급한 불은 꺼나가야”
국민연금 개혁 ‘역시나’…“성에 안 차도 급한 불은 꺼나가야”
  • 김명서
  • 승인 2023.11.19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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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정부, 국회 ‘핑퐁게임’ 되풀이…개혁안 조기 마련 ‘기대난망’

[김명서 칼럼] 이번에도 ‘혹시나’ 했지만 결과는 ‘역시나’였다. 국민연금 개혁안을 놓고 최근 한 달 넘게 펼쳐진 상황이 그랬다. 진정성, 책임감, 절박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말은 무성한 데, 알맹이 없이 변죽만 울리는 공허한 논쟁이 정부에서 시작돼 국회로 이어졌다.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지를 놓고 서로 떠넘기는 ‘핑퐁게임’이 어김없이 되풀이 됐다. 전문가 집단 역시 뒷짐만 지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지하다시피 개혁의 핵심은 2055년이면 고갈된다는 국민연금의 파탄을 막자는 것이다. 해법은 보험료를 ‘더 내고 덜 받게’ 만드는 것뿐이다. 현행 국민연금의 보험료율(내는 돈)은 9%, 소득대체율(받는 돈)은 42.5%다. 내는 돈은 올리고, 받는 돈은 낮추자는 데 누가 순순히 응할까. 사안 자체가 다수의 반발과 저항을 부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보험료율만 하더라도 우리는 주요 선진국(18%)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역대 정부는 보험료를 더 내달라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욕먹기 싫어 시간끌기식 ‘폭탄 돌리기'로 그냥 비켜간 것이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가 지난 주 2개 안으로 압축해 국회에 제출한 최종보고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책임감, 진정성이 없는 ‘면피성 보고서’라는 비난을 받았다. 전문가들이 장기간 14차례 회의를 거듭해 만들어낸 것치고는 재정 목표 등에 대한 구체적 제시 없이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했고, 그러다보니 현실화 가능성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문위원회가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제시한 1안은 보험료율을 13%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50%로 인상하는 안이다. 2안은 보험료율을 15%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지금보다 2.5%포인트 낮은 40%로 하자는 것이다. 1안은 ‘조금 더 내고 많이 받기’, 2안은 ‘많이 더 내고 조금 덜 받기’다. 당사자라면 누구나 1안에 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1안대로 간다면 국민연금 고갈시점은 2055년에서 2062년으로 불과 7년만 늦춰지게 된다. 개혁의 목표에 한 참 못 미치는 수치다. 

정부와 국회 민간자문위, "책임감, 진정성 없는" 보고서 제시 

그래도 자문위원회 보고서는 보건복지부가 지난 달 말 발표한 ‘맹탕 보고서’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나마 구체적이고 압축적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핵심인 보험료율‧수급개시연령‧소득대체율의 수치는 제시하지 않은 채 ‘더 내야 한다’는 방향성만 정한 두루뭉술한 개혁안을 내놓았다. 세대에 따라 의견이 다양한 만큼 국회의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댔다. 

반면 이보다 보름 쯤 전 정부 전문가 자문기구인 재정계산위원회는 모두 24가지나 되는 개혁 시나리오를 정부에 넘겼다. 하지만 핵심 중 하나인 소득대체율 문제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아무리 단일안 도출에 고충이 컸다고 하더라도 선택의 폭을 최소화하는 성의라도 보였어야 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결국 재정계산위원회와 정부가 정 반대로 나아간 셈이 됐다. 한 쪽은 “아무 거나 골라잡아도 상관 않겠다”는 식으로 다량의 시나리오를 무책임하게 제시했다. 반면 다른 한 쪽은 사실상의 ‘백지안’으로 연금개혁 논의를 원점으로 되돌려 놓았다. 

당장 내년 총선을 의식한 ‘몸사리기’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수급개시연령을 늦추면 해당 계층의 반발을 사기 때문에 선거에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년 4‧10 총선은 이제 5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총선 쪽으로 쏠려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 내고 덜 받는’ 인기 없는 개혁안 처리에 야당은 물론 여당이 앞장 서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다. 지난 번 국민연금특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정부안에서 기초연금 등과 연계한 공적연금 구조개혁안이 빠진 것을 비판했다. 국민연금만으로도 힘에 버거운 판에 이보다 훨씬 복잡한 공적연금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결국 총선 전까지는 국민연금 문제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우회적인 의사표시나 다름없다.

하지만 연금개혁은 더 이상 늦추면 안 되는 절박한 과제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저출산‧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보험료 인상폭이 걷잡을 수 커지고 미래세대 부담도 급증할 수밖에 없다. 2055년에 연금이 바닥이 나면 이후에는 연금 지급 상식이 납부금에 맞추는 부과식으로 바뀌어 100만원을 벌면 34만원을 연금으로 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는 게 전문기관의 분석이다.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시기 늦추는 쪽에만 논의 집중해야”  

따라서 ‘발등의 불’은 연금 고갈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다수 전문가들은  보험료율을 높이고 수급 시기를 늦추는 방안 마련에만 우선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소득대체율 인상 등 다른 방안들은 차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당장 재정 부족을 메워야 할 상황에서 소득대체율 인상 등으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키면 연금개혁은 산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하다고 마구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 대상이 모든 국민인 이상 끈질긴 설득과 조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단칼에 해결하려는 것보다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는 유연한 자세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100점짜리 개혁보다 행동으로 옮기는 50점짜리 개혁도 필요하다”는 견해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오랜 기간 논란이 돼 온 만큼 해법은 이미 나와 있는 것과 다름없다. 어느 방안을 선택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연금개혁의 국민적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정부의 ‘맹탕 보고서’가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윤 대통령의 연금 개혁 의지까지 의심할 여지는 없다고 본다. 

결국 내년 총선이 문제다. 여야 모두 연금 문제로 상대에게 꼬투리를 잡힐까봐 몸을 사리는 형국이다. 선거 때까지는 국민연금은 갈수록 사그러들 공산이 크다. 하지만 총선이 끝났다고 여건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다. 2026년 지방선거와 2027년 대선 등이 대기하고 있다. 설사 기대치에 못 미치더라도, 낙제점을 겨우 넘긴 방안이라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서울이코노미뉴스 부회장

-전 서울이코노미뉴스 대표, 주필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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