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졌잘싸'"…사우디 '오일머니'에 막힌 부산의 꿈
"마지막까지 '졌잘싸'"…사우디 '오일머니'에 막힌 부산의 꿈
  • 강기용 기자
  • 승인 2023.11.2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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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엑스포 리야드 119표, 부산 29표, 로마 17표…한총리 "송구, 무거운 책임감"
막판 총력전에도 사우디 '오일머니 파워'에 고배…저개발국 몰표간 듯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오른쪽부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박형준 부산시장,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장성민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을 비롯한 대표단이 28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팔레 데 콩그레에서 열린 제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투표 결과 부산이 탈락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서울이코노미뉴스 강기용 기자]  부산이 2030 세계박람회 유치전에서 막판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추격하며 역전극에 도전했으나 결국 고배를 마셨다.

부산은 28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진행된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29표를 획득, 119표를 쓸어담은 1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크게 뒤졌다.

3위 이탈리아 로마는 17표를 얻었고 기권표는 없었다.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참여국 중 3분의 2 이상표를 얻은 국가가 나오면 그대로 승리하고, 그렇지 않으면 결선투표를 치른다.

사우디는 투표 참여 165개국 중 3분의 2인 110표를 넘긴 119표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여유롭게 2030년 엑스포 개최지로 선정됐다.

한국은 중앙과 지방정부, 민간이 함께 지난 500여일간 지구 495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이동하고, 투표 직전까지도 분초를 쪼개 국제박람회기구(BIE) 대표 국가들을 상대로 총력유치전을 벌였지만, 사우디의 '오일머니' 장벽을 끝내 뚫지 못했다.

결선 투표까지 가겠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119대 29표라는 예상보다 큰 표 차이로 뒤지면서 역부족을 실감했다.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가 프레스센터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선정 투표결과가 프레스센터 모니터에 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민관합동 유치위원회를 구성해 경쟁국들보다 유치전에 늦게 뛰어들었다.  후발주자인데다 종교나 지역에 기반해 기본적으로 확보하는 표밭이 없는 탓에 초반 열세라는 평가가 대체적이었다.

그러나, 정부와 기업이 '원팀'을 이뤄 후반부로 갈수록 막판 스퍼트를 내며 사우디 리야드를 추격했다.

범정부 유치 활동상을 보면 윤 대통령은 정상회담과 각종 국제행사 등에서 90여개국, 500명 이상의 인사를 만나 부산 지지를 호소했다. 

윤 대통령이 국빈 방문 등을 통해 직접 찾은 국가만 10여개국에 달하며, 특히 지난 6월 BIE 총회에서 직접 부산 홍보 프레젠테이션(PT)을 하기도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90여개국의 150명 이상의 인사를 만나 교류하며 기회가 날 때마다 부산 지지를 요청했다.

최종 프레젠테이션(PT)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발표를 위해 연단에 오르며 전 발표자인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2
최종 프레젠테이션(PT)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발표를 위해 연단에 오르며 전 발표자인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과 하이파이브하고 있다. 2

한 총리는 9월부터는 한달에 한번 이상 해외 순방을 하며 BIE 회원국들을 직접 방문해 표심을 훑었다.  이 과정에서 비행기에서 숙박하는 강행군이 잦았고, 공식 면담일정을 잡지 못했던 회원국 고위인사를 공항, 심지어는 비행기 안에서 만나 붙들고 부산 지지를 설득하는 일도 있었다.

윤 대통령과 한 총리는 또한 정상급 인사들에게 전화 통화로도 지지를 요청했다.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국토교통부 등 주요 부처의 장·차관들도 각국 출장 때마다 힘을 함께 보탰다.

이번 엑스포 유치전을 민간 기업들이 함께 주도했다는 점도 한국의 특징점으로 꼽혔다. 한 총리와 함께 부산 엑스포 유치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의 '목발 투혼'이 대표적이다.

최 회장이 직접 방문했거나 국내외에서 면담한 국가는 180여개, 고위급 인사는 900명이 넘는다.

이재용 삼성전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구광모 LG그룹,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 총수들도 틈나는 대로 해외에서 부산 엑스포 유치활동을 벌여왔다.

유치전 막판으로 갈수록 민관이 힘을 합쳐 투혼을 펼쳐 '박빙 열세'까지 따라잡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9월부터는 프랑스 파리에 '한국 본부'가 차려져 정부와 민간 '원팀' 인사들이 수시로 모여 각자의 유치교섭 활동경과와 확보한 정보를 공유하며 시너지 효과를 냈다.

이처럼 한국의 총력전으로 BIE 내부에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그러자 사우디 역시 견제수위를 한껏 끌어올려 막판 유치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 최종 프레젠테이션(PT)을 마친 뒤 사우디측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8일 최종 프레젠테이션(PT)을 마친 뒤 사우디측 관계자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우디는 자국을 지지하는 국가의 파리주재 대사가 비밀투표에서 '배달사고'를 낼까 우려해 본국에서 투표자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는가 하면, 한국측이 접촉한 국가·인사를 알아내 압박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측 역시 사우디의 공세에 맞서 맞춤형 대응과 역공을 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양국이 서로의 동향정보를 입수해 표를 뺏고 뺏기는 신경전이 투표 직전까지도 오가기도 했다.

이날 투표 직전까지 우리측에서는 "혼돈 판세로 결선에 가면 승산이 있다"는 기대가 나오기도 했지만, 결국 실제 판세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발주자인데다 막대한 물량공세를 퍼부은 사우디가 선점한 표를 끌어오기에 는 여러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사우디가 개발원조를 공언한 점도 한국엔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2035엑스포 부산 다시 도전…결선없이 사우디 리야드 선정

한국은 1차에서 사우디가 3분의 2 이상 표를 얻지 못하도록 저지하면서 이탈리아를 누른 뒤에 결선투표에서 사우디에 역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정부는 투표 직전까지 내비친 역전 기대감과는 달리 예상보다 훨씬 큰 표 차이로 패하자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투표 직후 회견에서 "국민의 열화와 같은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스럽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국민 여러분의 지원과 성원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해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인다"며 "BIE 회원국 182개국을 다니며 갖게 된 외교적인 새로운 자산을 계속 발전시키겠다"고 덧붙였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부산시민들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BIE 실사단 방문을 열렬히 환영하며 한마음으로 노력해왔다"면서 "부산 시민들의 꿈이 무산되어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오른쪽 두 번째부터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한 총리, 박형준 부산시장.
오른쪽 두 번째부터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한 총리, 박형준 부산시장.

사우디보다 엑스포 유치전에 뒤늦게 뛰어든 우리나라는 당초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부·민간이 함께 힘을 합쳐 회원국을 일일이 접촉해 설득하며 후반부로 갈수록 박빙 판세까지 추격했다는 자체 판단을 해왔다. 

투표일인 이날까지도 결선에 진출해 이탈리아 지지표와 사우디 이탈표를 흡수하면 대역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최종 프레젠테이션(PT)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박형준 부산시장,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등 부산엑스포 유치 위원회를 이끌어온 인사들과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나승연 부산엑스포 홍보대사까지 총 5명이 나서 부산의 비전과 가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선발주자인 사우디의 벽은 높았다.

우리나라는 사우디처럼 종교나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기본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표가 적은데다, 사우디가 '오일머니'를 앞세워 일찌감치 회원국들을 포섭해 뒤집기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과 인권 탄압 등 사우디에 부정적인 국제사회 여론이 한국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겠냐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유치위원회 자문 역할을 한 김이태 부산대 교수는 "사우디는 왕권 강화를 위해 국민 충성·지지를 확보하는 일종으로 엑스포 등 대형 이벤트를 추진했다"며 "천문학적인 개발 차관과 기금을 주는 역할을 해서 금전적인 투표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경제난이 심화한 저개발 국가들이 사우디에 몰표를 줬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한국을 지지해준 회원국에 감사를 표하고, 유치과정에서 약속한 국제협력 프로그램을 차질 없이 실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치전 과정에서 쌓은 외교 네트워크도 국가 자산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방침이다.

부산시는 이번 투표 결과는 아쉽지만, 부산의 뛰어난 역량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2035년 엑스포 유치에 다시 한번 나서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투표결과 엑스포 유치가 무산된 것은 가슴 아프지만, 과거에도 주요 국제 대회와 행사는 여러 차례 재도전 끝에 성사된 경우가 많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그러한 시도 과정 자체가 외교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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