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면 생각나는 '전실기' 전설
겨울이면 생각나는 '전실기' 전설
  • 이영미
  • 승인 2023.11.30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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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칼럼] 추워질 때가 되기는 했다. 하지만 지난 가을이 워낙 덥고 짧아서인지 겨울이 빨리 온 느낌이다. 올 때가 되어 온 추위라 그런지 움츠리면서 또 반갑기도 하다.

이런 날이면 드는 생각.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고구마를 먹던 어린 시절 추억이 생각이 난다. 어느 겨울이던가, 우리는 으레 휴일 오후가 되면 느긋하게 연탄 땐 아랫목에 이불을 깔고 누웠었다. 엄마는 뜨개질로 겨울옷을 뜨다가 고구마가 익었다며 가져오셨다. 고구마에 얹어 먹던 김치와 동치미는 소화 잘되라고 곁들이기도 했지만 맛도 최고였다.

그런 한 겨울 어느 날, 식구들은 평소처럼 라디오를 틀었었다. 그때 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갑자기 떠오른다.

양반네 허위를 풍자한 고전 드라마였는데 얘기 자체가 재미있는데다 연기한 성우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걸죽하고 구성지던지 어린 시절에도 빠져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때는 조선 시대, 어느 양반 김가가 있었는데, 무얼 급히 먹다가 속병을 앓아 용하다는 의원을 찾았다. 의원은 치료를 해 주었지만 다 나으려면 딱 하나가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병이 다 낫기 위해서는 그것이 꼭 필요하다. 바로 '전실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 양반은 이게 무슨 말인가 하였으나 몰라서 묻는 것은 어쩐지 양반 체면에 어긋나고 부끄러워 그저 엣헴~ 헛기침 한 번 하고 알겠소 하고는 돌아왔다. 그러고는 그날 집 노비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 너에게 심부름을 시킬 것이니라. 가서 용한 의원에게 건너 마을 김가네서 왔다 전하고 '전실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오너라. 나도 잘 알고는 있다만 네가 가서 직접 물어보고 와야 그게 진정 잊히지 않는 지식이 되느니라. 고로 앎이라는 건 스스로 묻고 익혀야 된다는 걸 깨닫게 해 주려고 함이니 명심하고 다녀오너라.”

노비가 가서 의원에게 전실기가 무어냐고 물으니 그건 바로 소화에 꼭 필요한 것으로, 안에 있는 기체가 바깥으로 나오는 걸 이르는 말로 흔한 말로는 '방귀'라고 말했다. 노비는 저도 모르면서 아랫사람에게 시킨 높은 양반이 갑자기 우스워서 돌아오는 내내 배꼽을 잡았다.

돌아와서 양반이 물었다.

"그래 잘 알아 보았느냐? 무어라고 하시더냐?"

하여 노비는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예에. 나으리, 전실기는 아주 몸에 좋은 고급 술이라고 하옵니다."

"아, 그래, 잘 알아 왔구나. 그래 수고했다. 거 봐라. 이제 너는 그걸 잊어버리지 않을 게야. 에헴~~"

노비는 또다시 웃음을 참지 못해 돌아서서 웃었다.

며칠 뒤 양반은 그 의원을 집으로 불렀다. 내 일전에 신세 진 일도 있어 대접을 한다고 하면서 의원 앞에서 노비에게 일렀다.

"여봐라~~ 이 의원에게 대접할 상을 봐 오너라. 전실기도 한 병 가져오너라. 아, 무어라? 잊었다고? 내 뭐라 했느냐, 전실기란 고급 술이라고 하지 않았더냐?“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고 같이 듣던 식구들은 먹던 고구마에 목이 메도록 웃어댔다. 지금 와 찾아보니 ‘표준 한의학 용어집’에도 전실기란 단어가 방귀를 가리킨다고 나와 있다. 어쩐지 조선 시대의 노비와 서민들이 모여 실화를 바탕으로 풍자극을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추억은 고구마와 함께 돌아왔다. 새삼 생각난 건 고구마가 본래 ‘전실기’를 잘 만드는 소화에 좋은 겨울 식품이어서 그런가 싶다. 계절과 상관은 없지만 그 날 그 아랫목에서 고구마 잔뜩 먹은 가족들은 하루 종일 전실기를 뿜어 대며 웃고 손뼉 치지 않았을까 싶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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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2023-11-30 17:33:28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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