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이 지키는 세계
마녀들이 지키는 세계
  • 이영미
  • 승인 2023.12.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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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미 칼럼] 큰 애가 공부방에 다니면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온다. 남편은 늘 퇴근이 새벽이니 말할 것도 없고, 얼마 전 건강 검진을 받은 나는 당 조절과 다이어트를 권유 받았다. 작은 아이는 이제 만 일곱 살이라 저녁 밥상은 밥 한 공기에 반찬 몇 개가 전부다. 

헌데 늘 만들던 손이다 보니 줄이기가 쉽지 않아 매일 반찬이 남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지구한테 미안해 마음이 무겁다. 비료나 사료로 쓰이는 건 일부분이고 나머지는 땅에 묻어 탄소를 배출시킨다고 한다. 

사는 행동 하나하나에 죄책감에 덜컥거리는 건 갈수록 이상해지는 날씨 때문이다. 첫눈이라도 올 시기에 여름 날씨가 나오는가 하면 한겨울 추위 대신 봄꽃이 피는 무서운 날씨로 우리가 발 디딘 이 지구가 어떻게 될지 몰라 심하게 불안해진다. 

아마도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모습이 될 터인데, 사실 영화나 드라마를 비롯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인류의 미래를 그려왔었다. 그러던 가운데 그런 비슷한 장면이 이 한 권의 그래픽노블에서 보였다. ‘그리고 마녀는 숲으로 갔다’(산호지음, 고블) 는 산호 작가가 상상한 근미래의 마녀들을 그린 세계다. 사실 마녀라는 통칭은 이상한 생명력을 가진 작품 속 여인들을 가리킬 말이 뚜렷하지 않아 고민하다가 붙인 거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주인공 산이는 식품점에서 산 감자를 손에 쥐자 바로 싹이 돋아나 이걸 집 뒤뜰에 심을 자리가 있을까 고민하는 여자다. 

여러 이유로 고립된 마을에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며 그들을 치료하고 나무도 심으며 혼자 살아간다. 신비하고 낭만적으로 보일 테지만 정부는 이들을 ‘초 자연자 보호 구역’이라고 하여  한곳에 몰아넣고 통제를 하고 있다. 수도와 전기가 일정 시간에만 나오도록 하고 출입을 막고 있다. 산과 나무를 함부로 베는 걸 막아 개발하려는 업자와 국가가 거의 가두어놓고 있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사람들이다. 

사실 이 곳은 이들이 오래도록 살아온 곳인데 어릴 때 큰 사고로 고아가 된 산이는 오래전부터 자신을 돌봐주던 초원이 갑자기 사라져버려 그녀를 찾고 있다. 그러던 중 오래전에 산불로 화상을 입어 흉터를 갖고 있는 여기자 나송주가 이 통제된 구역에 취재를 위해 몰래 들어온다. 

자연을 살리는 이들이 왜 통제되고 구속되는지 모르지만 이야기는 그리 먼 미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들이 지키는 숲은 결국 세상을 구할 것이고 음습하고 어두운 숲이지만 푸르고 청명한 하늘이 조각구름처럼 남아있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읽힌다.  

작가 산호는 늘 보던 무화과나무가 잘려있는 것을 보고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다. 잘린 곳에서 새 싹이 났는데도 얼마 뒤 다시 거기 독한 제초제가 뿌려져 있었고 주위의 풀과 나무까지 전부 죽었다고 한다. 무화과 나무와 주위의 나무들을 전부 죽이고 지은 건물은 입주자가 없이 공실로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여름비가 계속 내리던 어느 날, 1천 원이던 애호박이 5천4백원이 된 것을 보고 우리는 이미 재난을 겪고 있는 거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개발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고 결과도 좋지 않은 이 미친 행동을 이제 그만 해야 될 때도 지나지 않았나 한다. 위기를 지나 재난이 시작된 것을 알려주는 긴 긴 비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엊그제 열렸던 국제회의에서 화석연료 퇴출이 아닌 에너지 전환에 합의했다고 하는 등 위기감은 커져간다. 그래도 이 한 권의 책을 쓰고 그리면서 보여준 짙푸른 숲 사이의 작은 조각하늘 하나에 다시 희망을 싹 틔워 본다. 새 싹을 돋게 하는 마녀의 손이 그 푸른 숲을 지키는 유일한 희망이라면 그녀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저녁 한 끼를 포기하겠다. 아, 물론 의사가 다이어트 하란 것 때문도 있기는 하지만.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이영미<klavenda@naver.com>

동화작가/문화예술사

세종대학교 대학원 미디어컨텐츠 박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신문만화

전 명지전문대 글쓰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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