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책임분담 기준안' 참고로 금융사 '자율 배상안' 내놓을 듯
[서울이코노미뉴스 김보름 기자] 올 들어 홍콩H지수와 연동된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규모가 5000억원을 넘어섰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홍콩 H지수 연계 ELS 판매 금융기관에 대해 '배상' 또는 '책임 분담'을 요구하는 투자자와 금융 당국의 압박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오는 16일부터 ELS 판매사에 대한 2차 현장검사에 나선다. 이를 통해 확인된 불완전판매 유형 등을 바탕으로 이달 말까지 책임분담 기준안을 내놓고, 판매 규제와 관련한 제도 개선안도 내놓을 방침이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기초 ELS 상품 가운데 올해 들어 지난 7일까지 모두 9733억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고객이 돌려받은 돈은 4512억원뿐으로, 평균 손실률이 53.6%(5221억원)에 이른다.
H지수가 5,000 아래로 떨어진 지난달 하순 만기를 맞은 일부 상품의 손실률(58.2%)은 거의 60% 수준이다.
올해 15조4000억원, 상반기에만 10조2000억원의 H지수 ELS의 만기가 도래하는 만큼, H지수가 현재 흐름을 유지할 경우 전체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5일 "설 연휴 전 검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유형화, 체계화하고 이후 이달 마지막 주까지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점검하거나 추가 검사에서 문제점을 발굴해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금융회사들이 검사 결과에 따라 일부를 자율적으로 배상할 수 있는 절차를 병행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본다"며 당국의 분담 기준안과 별개의 금융사 자율 배상안도 주문했다.
금감원은 오는 16일부터 시작하는 2차 현장검사 대상은 홍콩 H지수 ELS 주요 판매사 11곳(5개 은행·6개 증권사)이다.
지난달부터 진행한 1차 현장검사에서 파악한 불완전판매 사례와 관련된 유형을 점검하고, 다른 문제점을 발굴하려는 것이다.
금감원은 1차 검사에서는 은행들이 고령층의 노후 보장용 자금이나 암보험금에 대해 투자권유를 하거나, 증권사 창구에서 설명 녹취 의무를 피하기 위해 휴대전화로 온라인 판매를 한 것처럼 가입하도록 하는 등 불완전판매 사례를 확인했다.
금감원은 검사 내용을 바탕으로 이르면 이달 말까지 책임분담 기준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고령층 등에 알기 쉽게 상품 설명이 됐는지, 투자자가 과거 고난도 상품에 투자한 경험이 있는지, 가입 채널이 어떻게 되는지 등에 따라 유형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와 함께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와 관련해서도 전면 재검토 작업에 착수한다.
검사 결과에서 불완전판매 양태가 확인되는 대로 이번에 문제가 된 ELS 상품뿐만 아니라 은행에서 판매하는 고위험 상품에 대해 판매 규제를 원점에서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ELS뿐만 아니라 파생상품 등 고위험 상품은 원금 보장이 안 되고 손실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손실이 나는 상품에 대해서 은행에서 판매하는 게 좋을지, 어느 선까지 판매하는 것이 좋을지를 종합적으로 살펴보겠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다른 관계자는 "일단 우선순위는 피해자 손실 배상이고, 제도 개선은 검사 결과가 나와야 시작할 수 있다"면서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이후 제도 개선된 부분 중 어떤 것이 작동하고, 어떤 것이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리뷰해보겠다"고 전했다.
과거 DLF 등 사모펀드 사태 당시 당국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불완전 판매 여부를 판단하고 배상 기준을 제시할 때 불완전 판매 유형을 크게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 의무 위반 ▲부당 권유로 분류했었다.
각 피해 주장 사례가 세 가지 유형에 어느 정도 해당하는지 점수를 매겨 높을수록 많은 배상을 결정했다.
금융감독 용어 사전에 따르면 적합성 원칙은 금융사가 파악한 투자자 특성(투자목적·재산상태·투자경험 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할 의무 또는 부적합한 투자 권유 금지를 일컫는다.
구체적으로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감독 규정은 금융사가 투자자의 거래목적, 금융상품 이해도, 재산 상황, 투자성 상품 취득·처분 경험, 연령 등을 기준으로 투자 적합성을 판단하도록 했다.
예컨대 노후 대비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은퇴자에게 ELS와 같은 고위험·고수익 파생금융상품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 등을 금융사가 권유했다면 적합성 원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은행권이 향후 배상 과정에서 ELS 판매 과정상 적합성 위반을 당국이나 투자자들의 기대만큼 많이 인정할지는 불확실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아직 기준안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은행이 자율 배상안을 먼저 내놓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있다"면서 "순서상 기준안을 최대한 참고해서 자율 배상안이 완성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고객을 기망하고 사기 쳤으니 원금 전액 배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