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호 칼럼] 정치판이 달아오른다. 공천경쟁이 뜨겁다. 정치 표밭 계산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과 합종연횡(合從連衡)이 단골뉴스로 떠오른다. 국회의원 총선이 가깝게 다가오고 있음이다.
선거철이 도래할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오랫동안 TV 프로그램, ‘장수무대’ 사회를 보고계신 김동건 아나운서께서 오래전에 어느 대담프로에 출연하여 하셨던 말씀이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는다. ‘오랫동안 인기를 유지하며 아나운서를 해 오셨으니 정치에 나오라고, 공천하겠다고 부름을 받은 일은 없으신 지요?’ 사회자의 질문에 김동건 아나운서의 말씀은 한마디로 ‘정치는 아무나 하나요?’ 였다.
”정치 하려면 멸사(滅私: 개인의 사정을 돌보지 않음) 해야 돼요.” 이어지는 말씀이 더 감동이었다. “한 가족이 외출할 때, 어린아이들이나 가족은 누더기 옷으로 초라한데, 가장(家長) 혼자만 눈부시게 화려하다면 그 그림이 어울리겠어요? 차라리 반대로, 가장(家長)은 좀 남루하더라도 다른 식구들이 좀 화려한 게 낳지 않겠어요? 정치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할 수 없어요.” 김동건 아나운서의 거침없는 진심의 표현이었다.
그렇다~! 정치가나 보스는 한 가정의 가장과 같다.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멸사봉공(滅私奉公: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힘써 일함)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가 된다. 그러기에 진정한 보스와 지도자라면 존경을 받고 명예를 누리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연출된 지도자, 짝퉁 보스는 식솔들의 어렵고 힘든 사정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여 연출한다.
남의 돈을 이용해서라도 자기자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는다. 돈 벌어오는 가족들에 대해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있다면 그들이 어렵게 벌어온 수입을 헛되이 함부로 쓸 수 없다. 가족이 벌어들인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이 진정 가족애가 있느냐? 애틋한 마음이 있느냐? 의 척도가 된다.
연기는 못해도 멸사(滅私)는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
범위를 더 확대해서 보면, 사회 공동체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내는 세금이나 회비나 기부금 등을 주인 없는 눈 먼 돈으로 생각해서 자신의 ‘사리사욕에 우선 쓰고 보자’ 하는 것은 멸사(滅私)하는 태도와는 정 반대의 모습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꾸미고 ‘존경하는 국민~’을 외친다 해도,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배 채우며 이권을 챙기는데 공금을 함부로 쓰는 사람이 국민을 존경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멸사(滅私)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꿀벌의 세계에서, 일벌들이 물고 들어오는 꿀과 로열젤리를 집안에서 받아먹고 누리는 여왕벌은 사실, 보스가 아니라 종족을 번식시켜야만 하는 ‘애 낳는 기계’ 와도 같다. 그러나 사람은 각자가 생식기능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이기에 여왕벌 처럼 행세 할 수는 없다. 이권과 명예는 한 이불 속에서 동거할 수 없다. 부정한 돈을 탐하면 명예는 잃어야 하고 명예를 얻고 져 하면 검은 돈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이권도 거머쥐면서 명예도 취하고 져 하려면 연기를 해야 된다. 겉과 속이 같은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을 해야 한다. 사실,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을 존경하는 사례는 별로 없다. 연기를 잘해야 정치가나 지도자 보스가 된다면 모든 배우나 방송 연기자가 그 자리로 가면 된다. 연기는 못해도 멸사(滅私)는 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다. 뒷거래로 명예를 사는 것도 가짜 명예이고 연기로 진실을 감추는 것도 가짜 지도자다. 진실은 땅속에 파묻어 놓아도 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 정가는 유권자(국민)를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한 ‘프레임전쟁’중이다. 자신의 입지와 향배가 유리하도록 ‘기가 막힌 화두’를 만들어 발표하고, 여론을 이끌어 가고 있다. 정치나 사상의 효과적인 주입을 위해 사용되는 이런 프레임(frame)은 원래 틀, 액자, 테두리, 구조라는 뜻이다. 별로 신통치 않았던 그림도 멋진 액자(틀)속에 넣으면 아주 멋지게 보이고 반대로 귀한 그림도 형편없는 틀 속에서는 그 진가를 발하기 어렵다. 마술처럼 능력을 발휘하는 이 프레임은 그림작품의 틀처럼 실물만 있는 게 아니다.
이론이나, 종교적인 교리, 정치적인 바람몰이를 위하여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관념프레임(생각의 틀) 또한 만만치 않다. 특정한 이슈(issue)나 사실(fact)이 어떤 프레임에 갇히게 되느냐에 따라 그 파급효과는 엄청나게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프레임 속에 한 번 빠지게 되면 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 그 틀 속에서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선점된 관념의 틀’이 그만큼 무서운 것임에 틀림없다. 틀은 한마디로 생각을 그 안에 가두고, 시각을 한곳에 묶어두기 때문이다.
‘뿔 달린 난사람’ 손에 잡히면 많은 사람이 위험해질 수도
정치인들도 이러한 프레임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에 따라서 권력을 잡고 유지하는데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경우를 흔히 목격한다. ‘연대 프레임’ ‘단일화 프레임’ ‘민생 프레임’ ‘복지 프레임’ 등 대중인기(포퓰리즘)를 등에 업은 수많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특정 정치인에게 대박 나는 프레임이 반드시 국민에게도 대박이 될 것인지는 지나 봐야 알 일이다. 오히려 판단을 혼란 시킬 수 있는 ‘정치-사상프레임’은 국민에게 쪽박을 가져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난 사람’ ‘뜬 사람’ ‘된 사람’ 중에, 가장 먼저 되어야만 하는 사람은 ‘된 사람’이다. 기본이 되지 못한 채, 뜬 사람이 되면 난 사람은 될지 몰라도 된 사람은 아니다. ‘뿔 달린 난사람’ 손에 잡히면 많은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다. 돌팔이 의사는 한번에 한 사람만 죽이지만 ‘되지 못한 사람’에게 힘이 주어지면 한번에 몇 사람이 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길래 세계적인 명문, 하바드 대학에서는 학과 성적 좋은 것만으로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이기적인 지도자를 많이 배출시킬수록 명문대학이라 할 수 없으니 말이다.
청룡(靑龍)년에 치뤄지는 이번 총선은 '선동(煽動) 잘하는 뜬 사람' 보다 '멸사봉공(滅私奉公)잘하는 된 사람’이 조명 받고 지지 받는 정치문화가 떠오를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론조사때부터 공사구분(公私區分)의 엄격함이 자질검증의 주요 잣대가 되어야 한다.
잿밥이 염불보다 중요한 사람이 제대로 된 수행을 할 리가 없다. 공사구분이 되지 않는 인격이 선공후사(先公後私)와 멸사봉공(滅私奉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유권자의 예리한 눈과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는 대의(大義)만이 진정 선진정치의 시발점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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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