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춘부(待春賦)...‘정치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대춘부(待春賦)...‘정치의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가
  • 조석남
  • 승인 2024.02.2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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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엔 희망을 노래하자’...좌우, 빈부, 세대, 지역의 극단을 모두 아우르고 넘어서는 '화합의 봄'이 되길

[조석남의 에듀컬처] 입춘(立春), 우수(雨水)도 지나고 어느덧 봄의 길목이다. 아직도 아침 저녁으론 차가운 기운이 남아있지만, 아랫녘에선 벌써 ‘봄의 전령사’ 홍매화와 복수초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소식이다. 이제 꽃샘 추위도 지나면 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올 것이다.

봄이 오면 시인들은 ‘대춘부(待春賦)’를 짓는다. ‘봄을 기다리는 시’, ‘봄을 기다리는 노래’다. ‘봄을 기다리는 노래’라는 의미 그대로의 시로는 신석정 시인의 「대춘부(待春賦)」가 많이 입에 오른다.

‘우수도 경칩도 머언 날씨에 그렇게 차가운 계절인데도 봄은 우리 고운 핏줄을 타고 오고 호흡은 가빠도 이토록 뜨거운가?/ 손에 손을 쥐고 볼에 볼을 문지르고 의지한 채 체온을 길이 간직하고픈 것은 꽃 피는 봄을 기다리는 탓이리라./ 산은 산대로 첩첩 쌓이고 물은 물대로 모여 가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짐승은 짐승끼리 우리도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봄은 ‘기다림’이다. ‘희망’이요, ‘꿈’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과실나무 가지치기를 시작으로 일년 농사를 준비하는 것도 이때이고, 초목이 언 땅 깊숙한 곳에서 물을 끌어올려 새싹을 피워내기 시작하는 것도 지금이다. 땅 속 벌레들이 기지개를 켜는 것은 천하 만물이 봄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

중국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소군원(昭君怨)」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군원」은 화친정책에 위해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게된 불운의 절세미인 왕소군을 두고 지은 시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80년 전두환 신군부 독재시절인 소위 ‘서울의 봄’ 당시 3김(金) 중 하나인 김종필씨가 한국의 정치상황을 ‘아직 봄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인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후부터 ‘춘래불사춘’은 흔히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말로 많이 쓰여왔다. 하지만 다가오는 봄은 ‘춘래불사춘’이 아닌 ‘진정한 봄’, 말 그대로 ‘입춘대길(立春大吉)’이 되길 소원한다.

‘상생의 정치’, ‘희망의 정치’는 국민이 바라는 바다. 하지만 상생과 희망을 내세우는 한편으로 저질의 술수와 독설을 구사하면 해빙 기류가 스며들 수 없다. 상생은 여야가 서로를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는 ‘상존(相存)의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 난제를 함께 고민하고 풀어갈 때 희망의 정치도 싹이 틀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사는’ 극단의 대결이 도를 넘고 있는 작금의 총선 정국에서 ‘정치의 봄’ 징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경제적 지표는 연일 경고음을 내고 있는데 정치권은 이를 듣지 않고 오로지 권력 획득에만 몰입하고 있다. 민생을 돌볼 정치는 그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공천이 어떻고, 계파가 어쨌다는 이야기만 들려올 뿐 '사과 한 개 만원'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은 외면받고 있다.

대한민국이 최빈국에서 개발 도상국을 거쳐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동안 정치도 발전을 거듭해왔다. 과정은 삐거덕 거리기도 하고 퇴보와 진보를 반복했을지 몰라도 정치 집단 간 견제와 대립, 그리고 경쟁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치가 극심한 대립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지식인 집단과 고위 공직자를 근간으로 하는 보수와 진보, 지식인과 행동가를 바탕으로 하는 경쟁은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선진화를 동시에 이룩하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어느 순간 정치에서 위와 같은 경쟁은 사라지고 시민 사회의 연결 지점은 끊긴 듯하다. 지식인 집단은 찾아볼 수 없다. 담론이 아닌 특정인을 구심점으로 힘을 발휘하는 보수세력과 진보세력이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것이 작금의 정치가 돼버렸다.

봄은 언제나 소리 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봄은 격렬한 전투가 아니라 조용히 자신을 드러낸다. 잿빛 산하는 푸르고 붉은 원색으로 바뀌고 우리들 마음에도 따사로움이 감돈다. 각자가 자신의 본래 모습을 드러내는 자유를 만끽한다. 상대를 흉보거나 헐뜯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감싸주며 조화와 균형으로 제자리를 지켜간다.

한 가지 색상으로는 봄의 아름다움을 만들 수 없다. 희고, 붉고, 푸른 것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인정해야 비로소 봄의 미가 완성될 수 있다.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서는 같이 싸우겠다"는 명언을 남겼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좌우, 빈부, 세대, 지역의 극단을 모두 아우르고 넘어서야 보다 '희망찬 봄'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조석남 (mansc@naver.com)

- 한국골프대 부총장

- 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학장

- 전 서울미디어그룹 상무이사·편집국장

- 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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