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한 몸...간병살인, 개인만의 일인가?
삶과 죽음은 한 몸...간병살인, 개인만의 일인가?
  • 윤영호
  • 승인 2024.03.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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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복지와 안정망을 좀더 촘촘하게 운영, 사각지대에서 나 홀로 견디다 못해 발생하는 간병살인 같은 비극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윤영호 칼럼] 간병살인(看病殺人)의 비극이 사회안전망 사각지대에서 또 발생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아버지를 15년간 간병해온 50대 아들이 아버지를 숨지게 한 뒤 아버지와 함께 묻어달라는 유서를 남긴 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홀로 치매 아버지를 간병하면서도 건강보험공단 노인장기요양 서비스나 행정관청이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도 받지 못했다고 전해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한편 지난해 10월 대구에서는 중증장애인 아들을 40여년간 보살피다 숨지게 한 사건도 있었다. 오랜 간병생활에 지쳐 부모나 배우자 또는 자녀를 살해하는 이른바 간병살인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수십년간 자신을 키워준 부모에게, 요구하는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부모자식간 천륜을 끊고 절교하거나 심하면 위해(危害)를 가하는 패륜아(悖倫兒)가 있는 세상에서 오랜 기간동안 가족을 간병하며 고통을 감내해온 이 우울증 환자, 간병살인자에게 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결과적으로 국가와 사회는 한 사람의 타살과 자살행위 두가지를 막아주거나 예방하지 못했다.

인간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그에 따른 장기간 간병의 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시원한 대책은 없는 실정이다. 치매노인 100만명 시대에 길을 잃고 실종된 치매환자도 1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러한 치매질병은 어느 누구도 예외를 담보 받을 수 없는 심각한 질환이다.

신실한 성직자나 유명 정치인이나 심지어 대통령을 지낸 분이라 하더라도 이 질환에 걸리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그동안 누렸던 존엄한 삶과 인간관계가 일순간 단절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있는 사회적 보호망으로부터 사각지대에 있는 또다른 환자나 보호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극단적인 결단에 이를 정도로 힘겹고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치매와 같은 불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술이 개발될 때까지 우리는 기약없이 기다려야만 할 것인가? 그동안 발생되는 간병살인이나 열악한 환자가족의 힘겨운 삶은 마냥 방치되어야만 될 것인가?

감당할 수 없는 불치의 장기 노령환자를 힘없고 우울한 개인에게만 맡겨, 이처럼 동반 죽음을 선택하게 할 수는 없다. 보호자의 삶과 환자의 죽음을 동시에 조력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제도의 논의가 더욱 절실해졌다. 중증환자 간병비 의료보험적용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일이다.

국내법은 안락사나 조력사를 인정하지 않아

인간의 존엄한 삶은 존엄한 죽음과도 무관치 않다. 그런 이유로 복건복지정책과는 별도로 안락사나 조력자살등을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국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1994년 6월 네델란드의 어느 정신과 의사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환자에게 치사량의 수면제를 주어 자살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대법원은 의사에게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형을 선고하지 않았던 사건을 시작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스페인등 22개국으로 늘어났다. 회복 가망이 없는 불치병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생명단축을 도와주는 의료행위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법은 안락사나 조력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력사가 인정되는 국가에 원정가서 안락사를 한다고 해도 국내법으로 처벌받는다. 다만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포기하는 ‘연명치료거부 사전의향서제도’를 운영되고 있다. 필자도 이미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되어 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존엄한 죽음을 위해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거부하는 본인의 선택을 사전에 공적기관에 공인해 놓은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회적 복지와 안정망을 좀더 촘촘하게 운영하여 사각지대에서 나 홀로 견디다 못해 발생하는 간병살인 같은 비극이 더 이상 없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는, 차제에 존엄한 삶을 존엄하게 마감하기 위한 법적 근거도 마련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 죽는 게 아니라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행복한 죽음을 위한 웰다잉 연구도 보다 진지하게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이미 운영되고 있는 사전의료연명 제도와 호스피스 병동운영의 적용 범위를 현실에 좀 더 부합되도록 확장시킬 방안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죽음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라는 것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불치의 병으로 고통받는 본인이 원한다면, 당사자와 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존엄한 삶과 죽음을 위해서 무의미한 삶의 연장을 거부하거나 웰다잉에 조력을 받을 조건을 사회적 합의로 이끌어내는 데는 두가지 가장 큰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법과 제도를 악용하는 범죄발생 우려이고, 또 하나는 생명에 대한 종교적 신념이다.

범죄예방을 위해서는 제도운영이나 법 집행과정에서 제도의 남용이 발 붙일 수 없도록 겹겹이 세밀하고 촘촘한 안전 견제장치가 공론과정에서부터 과할 정도로 반영되어야 한다. 아울러 생명연장이나 단축에 대한 인간적인 노력과 결정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전통적인 신념에만 매몰되어 논의조차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풍조는 지양(止揚) 되어야 할 것이다.

감히 세상에 던져 본 인간의 고뇌스런 질문

이를 위해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고뇌스런 질문을 감히 세상에 던져 본다.

①하늘이 우리에게 부여한 천수(天壽)의 날짜는 확정불변인 것인가? 그렇다면 임플란트가 개발되고 의료기술이 발전하여 평균수명이 늘어난 것은 천부적인가 인위적인가? 100년전 평균수명이 60세 미만이었던 것이 오늘날 100세시대로 가고 있는 현상은 어떻게 볼 것인가?

②전쟁이나 코로나 같이 광범위한 사건이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것도 천부적인가? 의료인들이 백신개발을 하여 예방접종에 따른 대규모 감염예방은 천부적인가 인위적인가?

③생명활동기간을 늘이는 것과, 줄이는 것과, 방치하는 것은 하늘의 뜻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각각 차별적으로 해석해야 되는 것인가? 동일한 잣대로 해석해야 되는 것인가?

④수술을 위해 통증을 마비시키는 마취행위는 하늘의 뜻인가 인간의 기술인가?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의료사고는 하늘의 뜻인가 인간의 실수인가?

⑤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겠다는 불상생(不殺生)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지키면서 자기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가?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이나 물 속에는 수억 마리의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살아있다.

⑥이미 벌어진 모든 결과를, 거두절미하고 ‘하늘 뜻’이라고, 위안(慰安)적으로 의미 부여하는 것과, 현실에서 직면하는 실존의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 아닌가?

⑦인생 문제에 있어서 절대적 신(神)은 총론적 정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현상세상을 살고 있는 상대적인 인간은 목전의 각론적 명답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삶은 ‘어떻게 죽을 것이냐’고 묻고 있고, 죽음은 ‘어떻게 살 것이냐’고 묻고 있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두 얼굴의 한 몸이기 때문이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 소개

윤영호<yhy321321@gmail.com>

(사)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더뉴스24 주필

전 HCN지속협 대표회장

전 ㈜ 한림MS 기획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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