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28년 만에 회장직 신설…‘사유화’ 우려 속에 주총 통과
유한양행, 28년 만에 회장직 신설…‘사유화’ 우려 속에 주총 통과
  • 김보름 기자
  • 승인 2024.03.15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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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이사회 의장 “회장직 오를 생각 없어”
유일한 손녀, “할아버지 정신 무엇보다 중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15일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 입장하고 있다./연합뉴스

[서울이코노미뉴스 김보름 기자] 유한양행이 15일 서울 동작구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28년 만에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했다.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의 유지를 따라 '주인 없는 회사'로 운영돼 왔던 유한양행을 특정인이 사유화하려는 것이라는 일각의 의혹 제기에도 이를 관철시킨 것이다.

그 배후로 지목된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전 유한양행 대표)은 “추호도 그럴 생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날 주총에서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 등 상정 안건은 참석 의결권 중 95%의 찬성으로 모두 가결됐다. 

조욱제 유한양행 대표는 의안 통과 전에 "제약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혁신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면서 "회장·부회장 직제 신설에 다른 사심이나 목적이 있지 않음을 명예를 걸고 말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1926년 창립 이래 100년이 돼가는 유한양행 역사에서 회장에 올랐던 사람은 창업주인 고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고문 두 명이었고, 연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1996년 이후에는 회장 직에 오른 이는 없었다.

유일한 박사는 "기업활동을 통해 얻은 이윤은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줘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주인 없는 기업으로 운영돼 왔다. 유 박사는 1936년 회사를 개인 소유에서 주식회사로 바꿨고, 1939년에는 국내 최초로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해 본인 소유 지분 52%를 사원들에게 나눠줬다. 

연 고문은 이 같은 뜻이 이어질 수 있도록 재임 시절 고위직에 '직급 정년제'를 도입했다. 임원급은 6년 연임 후 추가 승진이 없으면 퇴임해야 했다.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모든 유한양행의 대표들은 취임 후 6년 후에는 대표직에서 물러나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이정희 이사회 의장은 대표 퇴임 후 비상무이사와 함께 이사회 의장을 맡아 9년째 이사회를 이끌고 있다. 

1978년 유한양행에 입사한 이 의장은 2015년 대표직에 올랐다. 이후 적극적으로 연구개발(R&D) 투자를 이끌며 폐암 치료제 렉라자 개발을 진두지휘하는 등 유한양행의 재도약을 위한 초석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회사가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하려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이 의장이 배후 실권자를 넘어 회장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과 더불어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유한양행 최대주주인 유한재단(15.8%) 이사회에서 유일한 박사의 손녀이자 하나뿐인 직계 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배제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역시 경영권 장악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일부 직원들은 특정인이 회장 직에 오르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모금을 통해 마련한 트럭으로 시위를 벌이는 등 거세게 반발해 왔다. 

이날도 본사 앞에서는 회장직 신설에 반대하는 트럭 시위가 벌어졌다.

유한양행은 정관 개정안이 공개된 후 회사가 성장하면서 이미 사장이 2명(조욱제 대표·김열홍 R&D 총괄사장)이고 부사장도 6명일 만큼 임원의 직급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이날 주총에서 주주들은 회장‧부회장 직제 신설에 대해 찬반 의견을 내놨다.

유한양행에서 40여년 간 근무했다는 한 주주는 “회사 성장에 따라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하는 것은 찬성하지만 누가 되느냐가 문제”라면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본인이 부회장을 노리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나이도 많고, 3년 후에 회사를 나갈 것"이라면서 "지금 회사에서 회장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유한양행 창업주의 유일한 직계후손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15일 유한양행 정기 주주총회에 참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연합뉴스

주총장에 나온 유일링 이사는 취재진에게 "할아버지의 정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것이 유한양행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그저 회사와 할아버지의 정신을 관찰하고 지지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유한양행은 앞으로 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회장과 부회장을 선임할 수 있게 됐다. 이 의장은 계속해서 비상무이사를 맡게 됐고, 조 대표도 연임에 성공했다.

회사는 주총 중 긴급 이사회를 열고 조 대표를 대표로 재선임했다. 지난해 유한양행에 합류한 김열홍 R&D 총괄 사장도 사내이사로 정식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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