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이재현 회장(54)은 여전히 '비운의 황태손'(?).
수천억원대 횡령·배임·조세포탈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회장이 지난 달 30일로 예정된 구속집행정지 만료를 앞두고 낸 연장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이날 오후 6시 서울구치소에 자진 출석했다. 검찰은 구치소 앞에서 이 회장에 대한 영장을 집행했다.
이에 앞서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이 회장 측의 구속집행정지 연장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문심리위원들과 서울구치소의 의견조회 결과 등을 종합해 볼 때 특별히 연장할 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CJ그룹은 충격을 지우지 못하는 모습이다. 한 관계자는 "재판부 결정은 존중해야 하지만 이해가 잘 안된다"고 넌지시 불만을 표시했다. 이어 "환자의 건강상태나 구치소 내 위생환경을 감안할 때 단순한 감염도 치명적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아쉽고 안타깝다"고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주치의 및 전문가의 객관적인 의견을 보강해 구속집행정지 연장을 재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수천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회장은 지난 해 8월 신장이식수술을 받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고 불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받아왔다.
그는 260억원 상당의 조세포탈 혐의, 비자금 조성으로 인한 603억원 상당의 횡령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지난 2월 징역 4년의 실형과 벌금 260억원을 선고받았다. 다만 법원은 이 회장의 사회적 유대관계와 현재 건강상태를 고려해 도주 우려가 없고 구속집행정지 상태이므로 법정구속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흔히 ‘삼성家 비운의 황태손’이라 불리면서도 제일제당을 지금의 CJ를 재계 순위 14위까지 끌어올린 장본인. 항상 따라다니는 ‘비운의 황태손’이라는 수식어는 그의 출생에서부터 시작됐다. 이 회장의 부친은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즉, 이 회장이 바로 삼성가의 ‘장손’이다. 하지만 한때 ‘양녕대군’이라 불린 아버지 이맹희 전 회장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삼성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넘겨주면서 이 회장의 굴곡진 운명은 시작됐다.
1960년 생으로 경복고-고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대학 4년 내내 점심을 학교 구내식당에서 해결하는 등 주변 친구들조차 이 회장이 ‘삼성가의 장손’이란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실제 삼성가 3세들 중 이 회장은 유일하게 해외유학을 다녀오지 않았다.
대한민국 최고 갑부이자 최대기업 오너집안의 장손이었던 이 회장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불화로 인한 아버지의 끝없는 방황을 지켜봐야만 했고, 또 그런 남편을 의지하지 않고 홀로 자식을 키워야했던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도 함께 걸어야 했다.
이 회장은 할아버지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과의 사이가 소원해진 뒤에도 장충동 할아버지 집에서 모친인 손복남씨와 함께 살았다. 호암은 장손인 이 회장을 각별히 아껴 무릎에서 내려놓질 않았다고 한다. 이 회장 또한 호암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호암은 생전에 ‘재물과 지위는 사람이면 누구나 바라는 바이지만 아무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정당한 수단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 속에서 살 수 없다’는 논어의 귀절을 자주 인용했다. 또 말년에는 방송과의 대담에서 “기업을 경영해 오면서 고통스러운 기억도 많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런 고통도 하찮은 일로,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XML
창사 이래 최대 위기인 CJ그룹-. 옥중의 이 회장은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까. 폭풍성장 가도를 달려왔지만 '영어의 몸'이 된 황태손을 하늘의 호암이 어떻게 내려다 볼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