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군(昏君)과 현군(賢君)
혼군(昏君)과 현군(賢君)
  • 정종석<발행인>
  • 승인 2014.07.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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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에 귀 열고, 지혜 빌리고, 제대로 소통과 대화 해야

정종석 발행인
 퇴근길에 우연히 라디오방송을 듣다가 상념에 잠기게 됐다.

 정치를 하다가 은퇴를 선언하고 얼마 전 작가로 복귀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을 ‘혼군(昏君)’에 비유했다. 유 전 장관이 지난 8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서다.

 진행자가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부에 대한 전망을 물었다. 이에 유 전 장관은 “그냥 지금처럼 쭉 갈 것 같다. 불행하게도..”라며 “옛날 왕으로 치면 좀 안 된 말이지만 ‘혼군’이다. 폭군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지혜를 빌려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혼군’이라... 사전을 찾아봤다. 혼군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 개인적 욕심과 입장에 치우쳐 '판단이 흐리고 어리석은 임금'을 가리킨다.

  대표적으로 1623년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이 혼군의 전형으로 통한다. 그렇다면 광해군은 왜 혼군이 됐을까. 조선조 제15대 왕 광해군(1575~1641)은 그야말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왕이다. 학계는 물론 일반인의 평가마저 극도로 엇갈린다.

 폭군(暴君)이라 단정하기엔 성군(聖君)의 면모가 엿보이고, 지극히 독단적인 이기주의자로 몰자니 합리적인 부분도 없지 않고…. 그런 혼탁한 평가의 와중에 줄곧 미담 격으로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명(明)과 후금(後金) 두 나라에 대한 양단정책으로 난국을 헤쳐간 성군.’ 과연 그럴까.

  재작년 발간된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오항녕 지음)은 혼란스러운 조선 왕 광해군을 정색하고 비판한 역사 해설서다. 저자가 광해군을 보는 시각은 잔인하다 싶을 정도다.

  왜 그토록 혹독한 평가를 할까. 저자가 ‘조선왕조실록’과 ‘광해군일기’를 샅샅이 훑어 해부한 광해군의 모습은 합리적인 개혁군주이긴 커녕, 오히려 비열하고 우유부단한 독재자다. 부친인 선조의 말엽부터 권좌에서 내려오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인조반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광해군의 문제점들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승하한 부친 선조의 상중에 역모의 올가미를 씌워 살해한 친형 임해군, 민생안정과 재정안정을 위해 지식인들이 시도했으나 광해군의 반대로 좌절된 대동제, 정쟁 끝에 죽이고 폐위한 동생 영창대군과 인목대비, 명나라의 압력에 못 이겨 출전한 후금과의 전투에서 몰사한 병사들, 재위 시절 내내 병적으로 매달린 궁궐 짓기….

  대략 부각시킨 큰 줄기의 폭정과 실정만 보더라도 광해군은 합리적인 성군이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 욕심과 입장에 치우친 혼군의 전형이다.

  반면 광해군을 기득권 세력에 의해서 희생된 슬픈 개혁 군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어쩌면 조선시대 세종과 정조와 함께 위대한 성군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재질이 있는 군왕이 바로 그였을 지 모른다는 것이다. 임진왜란을 극복하고, 백성을 위한 대동법을 시행하고, 자주 외교를 통해 조선을 안정시키고자 노력했던 점을 그 근거로 한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철저하게 반대당에 의해 매도됐고, 끝내 지지 기반의 약화로 인조반정이라는 허울좋은 쿠데타에 침몰되고 말았다. 조선 역사가 더더욱 사대주의로 치닫고 끝내 병자호란의 참혹함을 맞게 되었다.

  대동법은 광해 임금이 즉위 직후인 1608년 5월 경기도 지역 만을 대상으로 전격적으로 실시했다. 전국을 대상으로 삼기에는 기득권층의 저항이 너무도 심했다. 새로운 개혁의 시작이었다. 그렇지만 백성들을 위한 개혁정책과 자주외교 노선은 그를 끝내 국왕의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반정의 명분은 명나라에 사대하지 않는 이가 어찌 조선의 국왕이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요즘 같으면 강대국 미국에게 사대하지 않는 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기득권층의 저항과 무서움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는 셈이다.

  결국 광해는 강화도로, 제주도로 유배를 떠나 그가 꿈꾸던 대동세상을 만들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조선은 명군(名君)이 될 사람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다. 뒷날 인조반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책략과 명분에 의해 그는 패륜적인 혼군으로 규정됐다.그러나 같은 반정에 의해 희생된 폭군 연산군과는 달리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됐다고 보는 사가들도 적지 않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운영상 시련과 곤경에 봉착한 것은 모든 국민들이 잘 아는 사실이다. 특히 인사문제의 싵타래를 잘 풀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위기에 빠진 이래 국무총리 후보자들의 잇단 낙마로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을 혼군으로 평가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든다. 발언자인 유 전장관이 주군(主君)으로 받들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세간의 평가조차 아직도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지 않은가.

  '개관사정(蓋棺事定)'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은 역적이 되고, 여태 걸식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수도 있다. 사람의 운명이란 죽은 후에라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왕은 죽은 뒤에 묘호(廟號)를 정한다. 생전의 일은 사초(史草)라고 해서 왕 스스로도 볼 수 없고, 철저히 밀봉해서 후세의 평가에 맡기는 법이다. 하물며 아직 5년 임기 중 1년 반도 지나지 않는 대통령에게 혼군이란 표현을 했다는 것은 섣부르고 경솔한 판단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지난 날 동양의 지도자는 백성들이 먹고 살 곡식과 채소가 없으면 스스로의 책임이라 여기고 자책했다. 가뭄이나 홍수 등 흉황을 잘 다스리면 인정(仁政)이 되고 성군 또는 현군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폭정이 되고 폭군 혹은 혼군이 되고 만다.

  하물며 세월호같은 대참사가 일어난 마당에 대통령은 책임을 지지 않을 길이 없다. 최고 권좌에 있는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전임 정권 때부터 쌓인 적폐라고 항변해 봤자 공연히 메아리없는 변명만 될 뿐이다.

  다만 유 전장관이 “(이 난국에서) 벗어나려면 타인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이 시점에서 박 대통령이 꼭 귀담아들었으면 한다. 지금 대통령 주변에는 김기춘 비서실장과 일부 최측근 또는 비선(秘線)같은 ‘문고리 권력’ 밖에 없는게 아니냐는 세간의 평가다. 당대표를 뽑는 집권당 전당대회는 벌써부터 치열한 대권 공방으로 난타전 일색이다.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로서는 온통 식상하고 짜증나는 일 뿐이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 제1조에 명시돼 있다. 그런데 자기들이 뭔데 전당대회 후보들이 국민을 제치고 ‘대권 운운’하면서 설치고 있는가. 이야말로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김치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이런 일들이 또다시 되풀이된다면 광해군 시절의 정파싸움, 그리고 왕을 몰아낸 인조반정 전의 시대상황과 특별히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강대국 틈바구니에 있는 우리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돌쩌귀 신세’다. 이를 타개하려면 지도자가 열린 귀로 듣고 가슴을 열어 포용하는 수 밖에 없다. ‘혼군’같은 용어를 써가며 지도력을 폄하하는 얘기를 들으면 박 대통령도 속이 상할 듯 싶다. 그러나 지도자는 참고 또 참아야 한다. 그것이 군주의 덕(德)이다.

  예로부터 덕이 아주 뛰어난 어진 임금을 성군(聖君),포악한 임금을 폭군(暴君),나라를 어지럽히는 막된 임금을 난군(亂君),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을 혼군(昏君)),이름 높은 임금을 명군(名君),어진 임금을 인군(仁君),총명한 임금을 명군(明君) ,덕행을 베푸는 어진 임금을 현군(賢君),자비로운 임금을 혜군(惠君)이라고 불렀다.

  순자(筍子) 왕제편(王制篇)에서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엎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고 했다. 국민인 물이 능히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고, 또한 반대로 뒤엎을 수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한다.

  신하 위징이 순자의 이 말을 인용해 직언하자 당 태종은 이를 마음에 새기고 태자에게도 절대 잊지 말라고 했다. 태종은 위징에게 어떻게 해야 혼군이 되지 않고 명군(明君)이 될 수 있는 지를 물었다. 위징은 임금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 했던 간신 우세기를 총애한 수양제를 예로 들면서 ‘두루 폭넓게 들으면 밝아지고, 편벽하게 들으면 어두워진다’고 답변했다

 대통령이 혼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두루 주위의 지혜를 모으지 않으면 빛이 나지 않는다. 복잡다기한 현대 사회에서 모든 일을 혼자서 다하려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오히려 독선과 불통이라는 소리만 듣는다. 지금은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인사문제를 비롯해 권한을 과감히 배분하고 책임을 나눠져야 할 때다.

수첩이나 비선같은 비시스템적인 요소가 청와대에 남아있다면 곤란하다.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조직과 알아서 스스로 굴러가는 '시스템 인사'를 해야 한다. 대통령은 시스템을 만들고, 담당자에게 책임을 지우면 된다. 그렇게 되면 미주알 고주알 모든 국정책임을 대통령이 혼자서 송두리째 짊어지는 현재의 '기형적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

위정자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옛말이 정녕 빈말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요즘 따가운 여론에 매우 얼어붙은 눈치다. 그러나 성품이 곧고 애국심 만은 정평이 나있다. 민심은 변한다. 변하기 마련이다.아니 변할 수 밖에 없다. 민심에 귀를 열고, 주변에서 지혜를 빌리고, 제대로 된 소통과 대화를 하는 것 만이 ‘혼군’의 길로 가지 않고, 현군(賢君)을 좇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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