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청송 심씨(靑松沈氏)-212,717명
(38)청송 심씨(靑松沈氏)-212,717명
  • 정복규
  • 승인 2014.08.26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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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심홍부(沈洪孚)는 고려 때 벼슬을 지냈으며 그의 증손 심덕부가 고려 공민왕 때 왜구를 격퇴하여 공을 세운 뒤 청송백에 봉해졌다. 그 뒤 후손들이 청송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증손인 심덕부, 심원부 형제에서 크게 두 파로 갈린다. 이성계의 역성혁명 후 좌의정을 지낸 형 심덕부의 후손은 대대로 서울에서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동생 심원부의 자손들은 새 왕조의 벼슬을 마다했다.

현재 경북 청송군을 비롯해 영남 일대에 퍼져 사는 심씨들은 거의 심원부의 후손들이다. 이들은 형 집인 심덕부 집안을 가리켜‘서울집’이라 부른다. 그 숱한 정승, 문형(文衡), 왕비들은 모두 서울집 출신들이다. 오늘날에도 각계의 저명인사들은 대부분 심덕부의 후손들이다.

서울집은 심덕부의 아들 7형제에서 일곱 개 파로 나누어진다. 7형제가 모두 입신출세하여 이로부터 자손이 크게 번창 한다. 그 중에서도 넷째 집인 인수부윤공파와, 다섯째 집인 안효공파(심 온)가 번성하여 굵직한 벼슬을 도맡아 했다. 4세 심덕부가 좌의정, 5세 심 온이 영의정, 6세 심 회가 영의정을 지내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3대가 정승을 지냈다.

심 온의 딸은 세종비 소헌왕후이다. 그러나 그는 임금의 장인이면서도 상왕인 태종의 비위를 거슬려 끝내 사약을 받았던 비운의 주인공이다. 태종은 아들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도 병권만은 그대로 쥐고 있었다.

심 온의 아우인 심 정이 이에 불만을 품고 “명령이 두 곳에서 나온다”고 병조판서 박습(朴習)에게 불평한 것이 상왕인 태종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심정은 국문을 당하고, 심온은‘불평의 두목’으로 지목된다. 심온은 결국 명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체포돼 사위 세종이 내린 약사발을 받는다.

조선조 당쟁 발생의 직접적인 요인이 된 사람은 선조 때 청송심씨 심의겸과 김효원이다. 두 사람의 대립은‘전랑(銓郞)’이라는 관직을 에워싼 암투에서 시작된다. 이조(吏曹)에 속해 있던 전랑은 비록 그 자리는 낮았으나 관리의 임면을 장악하고 있는 중요한 자리였다. 처음에는 신진세력인 김효원이 전랑에 천거된다.

이때 이조참의로 있던 심의겸은 반대 의견을 낸다. 그러나 결국 김효원이 이조정랑으로 발탁되었다. 김효원의 임기가 끝나자 심의겸의 아우 심충겸이 그 자리에 추천됐다. 이번에는 김효원이 반대한다. 이때부터 마침내 구세력은 심의겸을 중심으로 서인, 신세력은 김효원을 중심으로 동인이라 하여 동서분당이 발생했다. 당시 김효원의 집은 서울 동쪽 낙산 밑 건천동에 있었다. 그래서 그 일파를 동인이라고 불렀다. 반면 심의겸의 집은 서쪽 정릉방에 있었기 때문에 그 추종자들을 서인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심수관은 일본의 한국계 도예가다.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와 박평의와 함께 사쓰마도기를 연 심당길의 14대손이다.‘상록수’의 저자이며 농촌문학의 선구자인 심훈(본명 심대섭)도 청송심씨를 빛냈다.

현대 인물은 심구복(가톨릭의대교수), 심길섭(국회의원), 심길순(서울대교수), 심달섭(의학박사), 심동원(의학박사), 심명원(주랭군총영사), 심문택(연세대교수), 심병구(서울대교수), 심병식(서울은행전무), 심보성(서울대교수), 심봉섭(국회의원), 심봉섭(가톨릭의대교수), 심상건(국악인), 심상구(변호사), 심상대(강원도지사), 심상명(검사), 심상선(한강개발 사장), 심상수(진해전지사장), 심상순(변호사), 심상웅(육군준장), 심상윤(전북대법정대 학장), 심상은(전진산업회장), 심상익(언론인), 심상준(제동산업 사장), 심상직(변호사), 심상칠(서울대교수), 심상하(호남전기 사장), 심상혁(부산대교수), 심상황(서울대교수), 심성택(고검검사), 심성택(한양요업 사장), 심승옥(의학박사), 심여택(제주대교수), 심연섭(동양통신논설위원), 심영근(서울대교수), 심우성(문화재위원), 심운택(성균관대교수), 심원택(산업은행이사), 심의락(대도산업사장), 심의석(인왕산업사장), 심의소(충남지사), 심의환(상공부상역국장), 심인보(대검수사관), 심일운(동광화학사장), 심재륜(변호사), 심재순(경제통신 상무), 심재언(소설가), 심재오(오학사사장), 심재완(영남대교수), 심재웅(연세대교수), 심재홍(외국어대교수), 심재후(한양대교수), 심정섭(서울대교수), 심정섭(서울대교수), 심종석(변호사, 초대참의원), 심종섭(전북대총장), 심주섭(낙양물산사장), 심준섭(춘천상의회장), 심중섭(한양대교수), 심창유(문교부기획관리실장), 심치선(연세대교수), 심태석(서울대교수), 심태식(경희대교수), 심태진(동국대사대부고교장), 심현구(인화물산사장), 심현대(동해통상사장), 심현성(숙명여대교수), 심현직(중앙제련사장), 심형구(화가), 심형필(중앙고교장), 심호섭(서울대의대학장), 심훈종(판사), 심흥선(육군대장), 심상선(전북대교수), 심강섭(주일대사관노무관)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청송은 경상북도 청송군의 지명이다. 1394년(태조 3) 진보현(眞寶縣)을 합병하였다. 1896년에 경상북도 청송군·진보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진보군 일부를 합하여 8개면으로 개편하였다. 현재 청송군은 청송읍과 부동·부남·현동·현서·안덕·파천·진보면 등 1읍7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송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청송박씨(靑松朴氏), 청송신씨(靑松申氏), 청송심씨(靑松沈氏), 청송이씨(靑松李氏), 청송장씨(靑松張氏), 청송정씨(靑松鄭氏), 청송지씨(靑松池氏), 청송최씨(靑松崔氏) 등이다.

주요파는 봉익공파, 악은공파, 도총제공파, 판사공파, 지성주사공파, 인수부윤공파, 안효공파, 선교랑파 등이다. 항렬자는 19世 지(之), 20世 능(能), 21世 의(宜), 22世 택(澤), 23世 상(相), 24世 섭(燮), 25世 재(載), 26世 보(輔), 27世 규(揆), 28世 용(用), 29世 녕(寧), 30世 기(起), 31世 장(章), 32世 후(厚), 33世 량(亮), 34世 남(南), 35世 무(茂)이다.

집성촌은 강원도 인제군 남면 관대리,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경남 합천군 대양면 덕정리, 경북 청송군 부남면 감연동,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전남 곡성군 겸면 칠봉리, 전남 장성군 남면 마령리, 전북 군산시 나포면 부곡리, 충북 괴산군 불정면 추산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심광언(沈光彦, 1490 庚戌生) : 문과(文科) 중종 20년(1525)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심통원(沈通源, 1490 庚戌生) : 문과(文科) 중종 32년(1537)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심충겸(沈忠謙, 1545 乙巳生) : 문과(文科) 선조5년(1572) 춘당대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심우정(沈友正, 1546 丙午生) : 문과(文科) 선조 16년(1583)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심연(沈演, 1585 乙酉生) : 문과(文科) 인조 4년(1626)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심선(1597 丁酉生) : 문과(文科) 인조 20년(1642)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등 모두 811명이 있다. 문과 194명, 무과 37명, 사마시 578명, 의과 2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청송심씨는 1985년에는 총 44,446가구 186,384명, 2000년에는 총 65,744가구 212,71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1천여 가구,2만6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46,101명, 부산 15,591명, 대구 7,374명, 인천 6,868명, 경기 26,515명, 강원 12,722명, 충북 6,464명, 충남 11,397명, 전북 8,197명, 전남 13,884명, 경북 11,718명, 경남 19,262명, 제주 289명이다. 경남, 부산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46,017명, 부산 16,349명, 대구 9,480명, 인천 12,160명, 광주 6,559명, 대전 5,881명, 울산 5,728명, 경기 45,524명, 강원 10,712명, 충북 7,035명, 충남 7,208명, 전북 7,157명, 전남 6,593명, 경북 10,251명, 경남 15,634명, 제주 429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부산과 경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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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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