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하동 정씨(河東鄭氏)-158,396명
(50)하동 정씨(河東鄭氏)-158,396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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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정씨는 본관을 같이 하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3계통이 있다. 밀직공 국룡파는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파조로 한다. 그 후 후손의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후손 정석숭을 1세조로 10세 정인지,12세 정여창 등으로 이어진다.

정승공 응파는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김자광록대부, 도첨의 좌정승 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파조로 하고 6세 정희(鄭熙), 7세 정초(鄭招)로 이어져왔다. 지부사공 손위파는 고려 숙종 때부터 명종 등 5왕조에 걸쳐 벼슬을 하여 정헌대부, 지례부사(知禮部事), 응양대장군, 문하시중을 지내고 하동백에 봉해진 정손위(鄭遜位)를 파조로 한다.

정숙첨은 고려조에서 추밀원지주사를 거쳐 고종 초에 참지정사가 되어 금산왕자(金山王子) 등의 군사가 침입했을 때 중군원사로 출전했다. 당시의 권신 최충헌의 아들 최 이(崔怡)를 사위로 삼았고 뒤에 평장사에 올랐다. 그의 아들 정안(鄭晏)은 인물이 출중하여 최 이가 국자제주에 임명했다. 그러나 최 이가 권력을 휘두르자 남해로 내려가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켰다. 뒤에 최 항 집권 후 참지정사에 이르렀는데 최 항의 인명 살상을 비난했다가 살해당했다.

고려 말 정지상은 원나라에 왕래하다가 강릉대군(뒤에 공민왕)을 시종하고 공민왕 때 판사에 이르렀다. 정지연은 밀직부사였던 정국룡의 아들로 중국어에 능했다. 충열왕 때 중랑장, 좌상시를 지내고 충선왕 때 동지밀지부사를 거쳤다.

하동정씨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상신(相臣) 1명, 대제학 1명을 배출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초, 정인지 등을 들 수 있다. 정초는 1405년 문과에 급제,1407년 문과중시에 급제, 좌정언이 되었다. 그 후 판승문원사를 거쳐 함길도도관찰사, 예조, 형조, 이조의 참판 등을 역임하고 이어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정인지와 함께 역법(歷法)을 개정했다.

정인지는 1414년 문과에 장원,1425년 직제학에 올랐으며 1427년에는 문과중시에 장원급제한 수재였다. 1453년 계유정난에 수양대군을 도와 우의정에 승진하고 정난공신 1등으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해졌으며 1455년 세조 즉위 후 영의정에 올랐다. 정인지는 천문, 역법(曆法), 아악 등에 관한 많은 책을 편찬했다. 특히 성삼문, 신숙주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컸으며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저서로‘학역재집’‘자치강목’‘치평요람’ 등이 있다.

하동정씨 문성공파는 바로 정인지 후손들이다. 정인지의 아들 정숭조는 호조판서에 올랐다. 정현조는 세조의 딸과 결혼, 하성위가 되었으며 정경조는 관찰사를 지냈다.

정여창은 일찍이 지리산에 들어가 3년 동안 오경(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했다. 성종 14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고 1490년 학행으로 천거되어 소격서 참봉이 되었다. 이 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검열, 세자시강원설서, 안음현감을 지냈다. 무오사화로 종성에 유배됐으며 죽은 뒤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부관참시 되었다. 그는 김종직의 문인이었으며 당시 성리학의 대가였다.

정봉수는 1592년 무과에 급제하고 이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전관으로 왕을 호종했다. 1605년 무안현 대장으로 흑산도 앞바다에 침입한 왜군을 섬멸하였으며 1627년 정유호란 때에는 철산의 의병장으로서 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철산부사에 특진되고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정인지(鄭麟趾, 1396 丙子生) : 문과(文科) 태종 14년(1414)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정인지(鄭麟趾, 1396 丙子生) : 문과(文科) 세종 9년(1427) 중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정희안(鄭希顔, 1396 丙子生) : 문과(文科) 중종23년(1528)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희적(鄭熙績, 1541 辛丑生) : 문과(文科) 선조1년(1567) 증광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동혁(鄭東赫, 1691 辛未生) : 문과(文科) 영조5년(1729) 식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최성(1745 乙丑生) : 문과(文科) 정조8년(1784) 정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정홍서(鄭弘緖, 1571 辛未生) : 문과(文科) 인조6년(1628) 별시 병과(丙科), 정세보(鄭世輔, 1613 癸丑生) : 문과(文科) 인조20년(1642) 식년시 을과(乙科), 정항령(鄭恒齡, 1700 庚辰生) : 문과(文科) 영조19년(1743) 정시 을과(乙科), 정몽필(鄭夢弼, 1725 乙巳生) : 문과(文科) 영조38년(1762) 식년시 병과(丙科) 등 모두 312명이 있다. 문과 63명, 무과 38명, 사마시 130명, 역과 43명, 의과 21명, 음양과 8명, 율과 9명이다.

정주영(1915~2001)은 현대그룹의 창업자로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전형으로 알려져 있다. 제3공화국 시절 박정희의 경제개발 정책에 편승하여 건설사업을 추진, 성공을 거두었다.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낙선했다. 1998년 이후에는 김대중 정권을 도와 대북사업 추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는 1998년 6월 16일, 통일소라고 이름 붙인 소 5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다. 2차로 1998년 10월 27일에는 소 501마리를 가져갔다. 그리고 마침내 금강산 관광사업에 관한 합의를 얻어 1998년 11월 18일에 첫 금강산 관광을 위한 배가 출발하였다. 대북사업을 위해 1999년 2월에 현대아산을 설립했다.

그밖에 현대 인물은 정문순(주일총영사), 정몽우(고려산업 사장), 정몽윤(현대해상화재 사장), 정몽준(국회의원), 정문채(국회의원), 정몽헌(현대전자 사장), 정비석(소설가), 정봉일(서울대교수), 정병조(성균관대교수), 정구현(시립마포병원장), 정남(국회의원), 정남채(남미도예사회장), 정덕기(충남대교수), 정득만(육군소장), 정두석(동국대총장, 태고종종정), 정나채(대영토건 부회장), 정몽구(현대자동차서비스 회장), 정몽근(금강개발 회장), 정문도(현대종합상사 회장), 정명래(부장검사), 정순영(현대시멘트 회장), 정상영(금강 회장), 정승익(동양시멘트 상무), 정성태(국회의원), 정원민(해군중장), 정현경(국회의원), 정병학(국회의원), 정창국(서울대교수), 정창범(건국대교수), 정창희(서울대교수), 정순민(육군소장), 정석해(숙명여대총장), 정영빈(충남대교수), 정익성(국립도서관장), 정용현(합동통신편집국장), 정원혁(육군소장), 정원훈(외환은행전무), 정진기(매일경제신문사장), 정종규(국도 회장), 정직래(국회의원), 정주상(서예가), 정재설(농림부장관), 정준석(한양대교수), 정천수(중앙일보국장), 정찬영(정내과병원장), 정태규(변호사), 정태현(의학박사), 정해국(가톨릭대교수), 정한숙(소설가), 정해준(국회의원), 정형택(육군소장), 정경한(해군준장), 정순태(중앙일보부장), 정은상(농진공영산강사업소장), 정환영(한양대교수), 정홍래(대지토건 사장), 정해규(성균관부관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본관 하동은 경상남도 하동군의 지명이다. 신라 때에는 한다사군(韓多沙郡)이었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 하동군(河東郡)으로 개칭하였고 악양현(岳陽縣)·합포현(陜浦縣 : 花開.화개) 등 4개현을 영현으로 관할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남해현과 합해 하남현(河南縣)이라고 하였다가 1415년(태종 15)에 다시 분리하여 하동현이 되었다. 1896년에 경상남도 하동군이 되었다. 하동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는 하동이씨(河東李氏), 하동정씨(河東鄭氏), 하동조씨(河東趙氏), 하동하씨(河東河氏) 등이 있다.

집성촌은 충북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 전남 신안군 장산면 도창리,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 전남 보성군 겸백면 도안리, 경남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평안북도 철산군 일대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하동정씨는 1985년에는 총 33,864가구 142,418명, 2000년에는 총 49,440가구 158,396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6천여 가구,1만6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8,865명, 부산 7,565명, 대구 1,669명, 인천 5,350명, 경기 17,832명, 강원 2,575명, 충북 5,972명, 충남 9,878명, 전북 4,935명, 전남 39,062명, 경북 1,344명, 경남 6,761명, 제주 610명이다. 전남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39,266명, 부산 8,108명, 대구 1,997명, 인천 9,763명, 광주 17,261명, 대전 6,289명, 울산 1,459명, 경기 32,886명, 강원 2,549명, 충북 6,011명, 충남 5,185명, 전북 4,392명, 전남 14,729명, 경북 1,806명, 경남 5,928명, 제주 767명이다. 1985년과 마찬가지로 광주, 전남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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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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